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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유고이시니 총리께서 대통령 대행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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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께서 유고이시니 총리께서 대통령 대행이십니다”

허문명 기자 입력 2013-09-06 03:00수정 2014-08-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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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106>유고2
10·26 법정에 선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 ‘그때 그 자리’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는 10·26사태 후 구속되었다가 1982년 5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다. 1988년 사면복권되었다. 동아일보DB
김계원 비서실장은 총에 맞은 대통령의 시신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안가에서 멀지 않은 병원으로 가는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도중에 각하의 생사의 촌각이 달려 있었다. 내 무릎에 기대 누운 각하의 숨결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리만치 서둘렀다. 병원 입구 검문에서 각하의 신분을 감추고 비서실장의 위급한 용무인 것으로 통과했다. 대통령인 것을 숨긴 채 각하의 전용 입원실에 강압적으로 명령하여 들여보냈다. 그리고 수행하여 온 2명에게 각하의 병실 밖을 경비하게 하고 일절 사람의 출입 및 접근을 못하게 지시하였다. 비상연락을 받고 출두한 책임 군의관에게도 각하의 신상은 밝히지 않고 상태를 물으니 병원에 도착 직전에 이미 운명하셨다는 진단이었다. 재차 환자의 신원을 묻는 병원 관계자에게 ‘각하’라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도 당시에 사망 진단을 내리고 하얀 천이 얼굴에 덮어진 후라 그 시신이 아직은 대통령임을 모르는 것 같았다. 엄중히 보안을 유지할 것을 지시하고 병원 밖으로 걸어 나와 마침 지나던 택시를 잡아타고 청와대로 갔다. 청와대 정문에서 경비 중이던 경호실 요원이 거수로 나에게 경례를 하며, 나의 상의(上衣)에 붉은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더니 흠칫 놀란 기색의 눈빛을 보였다. 정문을 통과하여 급히 청와대 나의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쓰러진 각하를 안가에 그대로 두라던 김 부장의 부탁이 있었는데 내가 이미 병원에 옮긴 뒤라 이것을 안 그가 다음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몰라 책상서랍에서 권총을 꺼내 실탄을 확인해 보니 장전되어 있지 않았다. 마침 옆의 경호실 경호5계장 전경환(전두환 당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의 친동생)이 보이길래 실탄 6발을 가져오게 해 장전하여 허리춤에 꽂았다. 숨(호흡)을 의도적으로 여러 번 내쉬어 보고 머리를 도리질 쳐보니 몽롱한 상태에서 겪은 이 대참변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하자, 오한이 나며 가슴이 막히고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김 실장은 ‘제일 먼저 누구에게 이를 알려야 되나?’ 생각하다 대통령 유고시에 헌법상 국가수반의 대리가 국무총리라는 것을 떠올리고 조심스레 최규하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유는 묻지 마시고 지금 급히 청와대로 들어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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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가량 지나자 최 총리가 도착했다. 김 실장은 그에게 “오늘 저녁 궁정동 안가의 ‘대행사’에서 차지철과 김재규가 싸우던 중 김재규의 총탄에 잘못되어 각하가 운명하셨습니다”라고 보고하고 곧바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을 비상소집했다.

이어 총리의 부름을 받은 김치열 법무장관이 들어오고 청와대 경호실 차장인 이재전 장군이 들어섰다. 다시 김 실장의 말이다.

‘이때 나의 가장 큰 염려는 청와대의 안전문제와 북괴의 도발이었다. 만일 대통령의 서거소식이 아무런 준비 없이 알려지면 국가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불의의 사태가 발생될지 모르고 더욱이 중앙정보부와 청와대 경호실 양측의 대규모 충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각하의 신변과 차지철 실장 행방을 묻는 최 총리의 질문에 나는 완고하게 ‘보안’이라 하였다. … 오리무중,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였다. 김재규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정동 안가에서 신발도 안 신은 맨발로 이성을 잃은 채 허둥지둥 권총을 들고 뛰쳐나간 그가 지금 무엇을 획책하고 있는지 불안하였다. 비상으로 소집된 수석비서관들이 청와대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김재규로부터 김 실장을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실장님! 제가 지금 육군본부 상황실에 있습니다. 여기에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장군과 노재현 국방장관(그는 정 총장의 연락을 받고 왔다)도 함께 있으니 여기로 건너오십시오.”

김 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김 부장! 이곳에 총리께서 와 계시니 먼저 노 장관과 함께 이곳으로 와요.”

그러자 김재규는 “아이고, 실장님 내가 어떻게 거기로 갑니까? 이곳으로 총리를 모시고 서둘러 오십시오” 재차 말한다. 기분이 언짢은 목소리였다.

김 실장은 전화를 끊고 최 총리에게 통화내용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각하께서 유고이시니 지금부터는 헌법이 보장한 대로 총리께서 대통령 대행이십니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비서실장으로서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는 국방부 장관을 비롯하여 각 군의 총장을 장악하고 향후 사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하려 할 것이며, 만일 여기서 남산의 중정과 경호실 간에 충돌이 생기면 내란으로 확전될 수 있습니다. 우선은 김재규의 체포가 제일 급선무이니 그를 체포하는 것에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고 (우리가) 사태의 진상을 모른다는 듯이 국방부로 가서 사태 수습을 강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 실장은 결국 총리와 함께 청와대에서 나와 육군본부로 향했다. 그리고 육군본부 지하 벙커로 갔다. 김재규도 거기 있었다. 다시 김 실장의 회고다.

‘벙커 안은 완전히 전시(戰時)를 방불케 했다. … 국방부 장관 노재현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최규하 총리와 정부 관계자 일행을 모시고 지상에 있는 국방부장관실로 향했다. 나는 김재규를 데리고 가까운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 사람아! 각하를 왜 그랬어?” “….” 내가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자 (김재규는) 묵묵부답, 이제 다 끝난 일 가지고 왜 그러냐는 식의 몸짓이다. “이제는 보안이 중요해요. 각하의 서거를 절대 발표하면 안 됩니다. 먼저 혁명위를 조직하고 계엄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는 아직도 대통령의 유해가 궁정동 안가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때까지도 대통령 시해를 아는 사람은 총리를 비롯한 극히 몇 사람뿐이었고 벙커에 모인 나머지 모두는 각하의 서거만 알지 시해를 당하였다는 그 이상의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비상국무회의가 소집되었다. 국방장관 대회의실 옆의 대기실에 모인 장관들이 심야 회의에 몹시 불안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끝내 각하의 서거를 전해들은 국무위원들은 비보에 침통해하며 몇몇 장관은 눈물을 흘렸다. 김재규는 나와 같이 대기실에 들어가 앉아 있는 동안 내 주위를 계속 맴돌며 살기 서린 눈빛으로 나를 감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회의가 개시되기 전부터 김재규는 국가안보상 시급히 전국에 계엄선포를 내릴 것과 대통령 서거 소식을 유보할 것을 주장했다. 이 주장에 다른 국무위원이 반대를 표명하자 비장한 각오인 듯 큰 목소리로 강변을 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유고시에 일주일 아니 보름 동안 발표를 유보하는 나라들도 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이 말을 들은 국무위원들은 말문을 닫아 버렸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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