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외국인에 맡긴 ‘추석 벌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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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과 산림조합은 소액의 돈을 받고 벌초 대행을 하고 있지만 도시민들은 벌초 대행 일손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왼쪽 사진). 조상 묘를 벌초할 사람이 없어지자 올 4월 전남의 한 문중은 선산 묘를 시멘트 묘로 바꾸기도 했다(오른쪽 사진). 농협 전남본부 제공·동아일보DB
농협과 산림조합은 소액의 돈을 받고 벌초 대행을 하고 있지만 도시민들은 벌초 대행 일손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왼쪽 사진). 조상 묘를 벌초할 사람이 없어지자 올 4월 전남의 한 문중은 선산 묘를 시멘트 묘로 바꾸기도 했다(오른쪽 사진). 농협 전남본부 제공·동아일보DB
‘시멘트 묘’에 이어 벌초마저 외국인 근로자가….’

3일 오후 1시 전남 진도군 임회면의 한 산. 베트남 출신 근로자 A 씨(27)가 비명을 질렀다. 갈고리로 풀을 모으다 오른쪽 다리를 벤 것이다. 그는 산 주인의 요청을 받고 묘 3기의 벌초 대행을 하던 이 동네 주민 B 씨(66)에게 고용돼 함께 벌초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B 씨는 3일 오전 전남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A 씨를 일용근로자로 데려왔다. 마을이장 하모 씨(69)는 “시골마다 방치된 조상 묘가 수두룩하지만 벌초를 할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추석을 앞두고 농촌에서 벌초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가 벌초를 대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농촌은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데다 국내인들은 공공 근로사업보다 힘든 벌초 작업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진도의 경우 주민 3만3190명 가운데 9796명(29.5%)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한 외국인 단체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변 소개를 통해 광주 광산구 지역이나 전남 완도로 벌초 작업을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벌초 작업으로 하루 일당 7만∼8만 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일용근로를 나가는 것은 불법이어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민들은 벌초대행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8년부터 벌초대행을 해주고 있는 진도 산림조합은 올 추석 때 50∼70대 일용근로자 4명을 채용해 묘지 250기를 벌초할 계획이다. 진도 산림조합 관계자는 “해마다 벌초대행을 요청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일손이 부족해 70% 정도만 받는다”고 말했다. 평균 20m²(약 6평)인 묘 1기당 벌초 작업 시간은 보통 30분이다. 근로자 1명이 묘 10기가 있는 산을 벌초할 경우 4, 5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전국 산림조합과 농협 597곳에서 지난해 묘지 4만322기를 벌초했지만 태부족이다.

묘지를 관리할 사람이 없는 데다 멧돼지가 묘를 파헤칠 것을 우려해 봉분과 그 주변을 잔디 대신 시멘트로 덮는 곳도 있다. 올 초 전남 고흥에 등장한 시멘트 묘는 논란이 일자 파란 인조잔디로 덮인 상태다. 묘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봉분이나 그 주변을 블록, 대리석 등으로 꾸미는 것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 등은 전국의 산에 흩어져 있는 묘가 1500만∼2000만 기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화장률은 1954년 3.6%, 1981년 13.7%, 1991년 17.8%, 2012년 72.1%로 상승하고 있다. 조상의 묘를 개장해서 유골을 화장해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자연장 하는 개장유골 사례는 2010년 4만6296건, 2011년 4만4328건, 2012년 8만7982건으로 늘었다.

박복순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산에 묘를 조성하는 문화가 있지만 최근 관리의 어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궁여지책으로 시멘트 묘 등을 조성하는 것보다 화장한 뒤 자연장 등을 통해 추모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진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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