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적기가(赤旗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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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적기가(赤旗歌)’는 시체를 앞에 놓고 분노에 치를 떨 때 불러야 제 맛이다. 노래 자체가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깃발을 물들인다’는 맞춤형 구절로 시작된다.

인간은 누구나 분노한다. 그러나 어떤 분노인가에 따라 인간의 행동도 달라진다. 공포의 사슬 안에 갇힌 분노는 힘이 없다. 반면에 죽음의 공포라는 사슬을 끊어버린 분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괴력을 만든다. 적기가는 죽음과 비장함을 감정적 배경으로 깔고 인간의 분노를 용솟음치게 만들어 죽음을 불사하게 하는 투쟁의 노래다.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전장에서 전우가 옆에서 죽어갈 때 나도 저렇게 될 것이란 생각에 두려워 몸이 굳어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우의 시체를 보면 분노에 눈이 뒤집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는다고 한다. 최근 시위가 끊이지 않는 중동에서 시위대 앞에서 순교자의 관을 메고 행진하는 것도 잘 계산된 전술이다. 사람들을 분노하게 해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려는 것이다.

1930, 40년대 만주 빨치산이 적기가를 애창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투가 끝난 뒤 이성과 공포라는 인간 본연으로 돌아올 감정을 장례의식을 통해 다시금 분노로 승화시키는 데 적기가만큼 적절한 노래가 어디 있나 싶다. 6·25전쟁 때도 북한은 적기가를 통해 사람들의 분노의 감정을 계속 고조시켰다. 이 땅에선 적기가가 울려 퍼지는 곳에선 늘 피가 흘렀다. 적기가는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분노한 인간을 양산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공산주의를 당 강령에서 파버린 오늘날의 북한은 혁명가요를 가장 겁내는 나라가 됐다. 3대 세습의 왕조를 만들고, 옛날 적기가를 부르며 싸웠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기득권을 물려받는 체제를 겨우 구축했는데, 이제 굳이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해 투쟁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적대계층이라는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분노를 씹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다만 이들에겐 죽음의 공포를 이길 용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북에서 살았던 때 적기가를 공식 행사에서 불렀던 기억은 한 번도 없다. 황장엽 비서가 망명했을 당시 북에서 적기가가 반짝 부각됐던 때는 있다.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라는 후렴 때문이었다. 하지만 ‘갈 테면 가라’고 해놓고 탈북자들을 악착같이 잡아다 엄벌하는 것이 북한이다. 오늘날 북한은 비겁한 자가 아니라 가장 용감한 자가 떠나는 나라가 됐다.

북한에선 적기가뿐 아니라 ‘목숨 걸고 혁명에 나서라’고 추동하는 다른 혁명가요들도 시대착오적 노래가 된 지 오래다. 그 대신 김정일 부자 찬양과 충성을 고취하는 세뇌의 노래만이 차고 넘친다. 만약 북한에서 ‘적기가’를 부르는 비밀 모임이 적발된다면 정신병자라는 딱지가 붙어 수용소에 종신 격리될 것이 분명하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분노#적기가#북한#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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