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미야자키 하야오, 거장의 은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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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迷兒)가 됩시다. 다 함께!’ 일본 도쿄 도 미타카 시에 자리한 이 미술관의 캐치프레이즈는 색다르다. 동화 속 세상처럼 꾸민 미술관은 어딜 먼저 봐야 한다는 압박감 대신 발길 닿는 대로 미로 같은 통로와 틈새까지 탐험할 것을 권한다. ‘길을 잃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는 책 제목처럼.

▷이곳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72)이 직접 디자인한 지브리 미술관이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히트작을 현실로 불러온 공간이다. 그는 1985년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를 세운 데 이어 2001년 미술관을 열었다. 지브리는 이탈리아어로 사하라 사막에서 부는 열풍을 뜻한다. 애니메이션 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담았다. 선견지명을 발휘한 작명 덕일까. 그의 회사는 작품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작품들로 승승장구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미야자키 감독은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운동보다 독서와 그림을 좋아했다. 경제학을 전공했던 대학 시절 만화를 청소년 신문에 기고했고, 1963년 도에이 동화에 입사 후 애니메이션의 전 과정을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익혔다. “미야자키 감독에겐 우수한 스태프가 필요한 게 아니야. 또 다른 미야자키 하야오가 몇 명이나 필요한 거지. 머리칼을 뽑아서 숨을 불어넣으면 그 즉시 분신이 되는 손오공처럼.” 예전 함께 일했던 직원의 말처럼 그는 ‘독재자’라 할 만큼 작화와 연출 과정에 엄격했다. 그런 치밀함과 치열함으로 그는 만화영화를 아이들 전유물에서 환경과 평화, 휴머니즘을 외치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최근의 우경화 바람 속에도 미야자키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등 양심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한다는 소식이다. 내일 국내 개봉하는 ‘바람이 분다’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는 걸까. 가미카제 특공대의 전투기를 설계한 인물의 실화를 담은 이 영화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작품에 대한 비판과 별도로 애니메이터들의 우상인 그의 퇴장은 전 세계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길 것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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