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기재부 등 부처 11곳, 3급이상 여성 한명도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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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정부 6개월… 여성고위직 얼마나 늘었나]<上>여전히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

朴정부 6개월, 여성고위직 얼마나 늘었나
“그때는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처에서 선배건 후배건 남자밖에 없었으니까요….”

올해 3월 여성가족부 차관이 된 이복실 차관(52·여)은 29년 전 일을 떠올렸다. 1984년 제2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동기 100명 중 여자는 단 2명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정현옥 고용노동부 차관(56)이다.

두 명뿐인 여자 동기가 모두 차관에까지 올라 주변에서는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지만 그동안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문교부 사무관으로 발령이 났을 때 이 차관은 ‘왜 여자가 공무원이 됐느냐’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고 했다. 당시 중앙부처에서 15명 정도가 전부인 여성 사무관들이 따로 모임을 가지던 시절이었다.

문교부에서 근무하던 이 차관은 2년 뒤 지방 경험을 쌓으라는 말을 듣고 경기도교육청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최초 여성 사무관이었지만 고참 남자 공무원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1980, 90년대에는 여성 공무원을 대우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 차관은 “학연, 지연도 없이 내 능력만 가지고 이 부처에서 크기가 어렵다고 생각해 신설 부처로 옮겼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새로 간 정무장관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9년차 고참 사무관을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승진도 늦어져 5급 사무관에서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는 데 꼬박 12년이 걸렸다.

이 차관은 “지금도 정부부처 내 남성 중심 조직문화로 여성 공무원들이 불이익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거친 부처로 꼽히는 고용부에서 잔뼈가 굵은 정 차관도 “지금까지 소신과 배짱으로 버텼다”고 털어놨다.

○ 부처 간 극심한 쏠림


1990년대 초에는 행시 여성 합격자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1995년에 처음으로 19명이 합격해 두 자릿수를 넘었고 곧 두 자리 비율을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여성 합격자 비율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늘어났다.

여성 합격자 비율이 늘어나지만 고위 공무원까지 올라가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게 여성 공무원 사회의 대체적 의견이다. 공직의 폐쇄성 때문에 개방형 고위 공무원으로 들어오는 여성도 아주 적어 여성 고위직이 늘어나기 힘들다.

특히 지금도 3급 이상 여성 공무원이 한 명도 없는 부처가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법제처 관세청 국세청 산림청 중소기업청 해양경찰청 방위사업청 소방방재청 특허청 등 총 11곳에 이른다. 여성이 수행하기에는 업무가 힘들고 조직문화도 마초적 분위기가 강해 ‘여성 고위직 제로 부처’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여성 5급 공채 배정 인원이 적어 여성 고위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인력이 현실적으로 부족한 데다 업무량이 많아 여성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방방재청 역시 “다른 부처보다 비상·초과 근무가 많다보니 여성들이 꺼린다”고 전했다.

이에 반해 일부 부처는 여성 비율이 높아 부처 간 불균형이 두드러졌다. 여성가족부는 2, 3급 고위공무원 10명 중 여성이 8명(80.0%)을 차지했다. 교육부도 2, 3급 고위 공무원 30명 중 여성이 8명(26.7%)이고 문화체육관광부는 1∼3급 이상 46명 중 5명(10.9%)이 여성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여성들이 행정고시를 치를 때 교육행정이나 일반행정 분야에는 많이 지원하지만 재경 분야는 그렇지 않다”며 “처음부터 자원이 적은 데다 특정 부처 기피 경향까지 더해지면서 부처 간 양극화가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고학력 여성 고위 공무원의 쏠림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문화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산업통상자원부는 3급 이상 여성 고위 공무원이 모두 박사학위 소지자다. 업무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특정 부처에 최고 학위를 지닌 여성 고위 공무원이 몰리는 것은 정부 전체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 여성 늘릴 특단의 대책 있나

전문가들은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까지 4급 이상 여성 공무원을 15%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여성들이 자기 힘으로 유리천장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단기간에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여성 인력풀이 부족한 데다 4급에서 3급으로 승진하는 데만도 10년이 걸려 여성에게는 벅찬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여성 고위직 수가 적은 공기업 인사 관계자들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전체 고위 공무원단 수가 크게 늘지 않는 점도 여성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고위직에 빈자리가 생겨야 여성이 진출할 수 있지만 현재의 조직편제로는 빈틈이 생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승진 가점 부여나 의무인원 할당 등의 방법이라도 사용해야 미래 여성 인재 10만 명을 양성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만형 중앙대 교수(공공인재학부)는 “현재 관료조직은 여성을 빨리 승진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며 “장관이나 공공기관의 장을 비롯한 정무직이나 계약직에 능력 있는 여성을 임명해 여성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여성고위직#유리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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