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옥 “‘나쁜 년’, 참 어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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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4일 07시 00분


드라마 ‘투윅스’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에게서 가장 멀리 ‘일탈’하고 있는 김혜옥. 평소 모습과 너무 달라 “걱정이었다”면서도 “재밌다”며 악역에 흠뻑 취해 있었다. 사진제공|MBC
드라마 ‘투윅스’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에게서 가장 멀리 ‘일탈’하고 있는 김혜옥. 평소 모습과 너무 달라 “걱정이었다”면서도 “재밌다”며 악역에 흠뻑 취해 있었다. 사진제공|MBC
■ ‘투윅스’서 악랄한 국회의원 조서희 열연 김혜옥

다툴 일 있을땐 심장부터 뛰는 성격
악한 캐릭터 걱정에 내내 고민·연구

2004년 ‘올드미스다이어리’로 제 2연기
내 안에 있던 ‘푼수끼’ 그때 발견
요즘은 대변신…악랄함을 꿈꾸죠

“나는 태생적으로 욕심이 없다.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사는 걸 좋아한다. 이런 내가 ‘나쁜 년’을 연기하는데…,처음에는 어려웠다.”

“연기는 남의 인생을 사는 것. 그것도 핵심만 뽑아서 연기자는 핵심보다 더 진하게…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지 여전히 어렵다.”


“‘나쁜 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웠다.”

연기 경력 30년 이상의 연기자에게도 고민은 필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이라면 촬영 나가는 날은 고민의 연속이다. “대충 상황은 그려지는데, 모르겠어” “대본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라며 고충을 털어놓는다. 베테랑에게도 연기 변신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또 다른 도전이다. MBC 수목드라마 ‘투윅스’에서 겉은 한없이 착하지만 속으로는 탐욕에 사로잡힌 국회의원 조서희를 연기하고 있는 김혜옥(55)의 이야기다.

“나는 태생적으로 욕심이 없다.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사는 걸 좋아한다. 번잡하고, 일 크게 벌이는 걸 싫어한다. 주어진 것만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내가 ‘나쁜 년’을 연기하는데…, 처음에는 어려웠다.”

대중이 익히 알고 있는 김혜옥의 모습은 온화한 미소로 남편이나 아들에게 ‘징징거리는’, 조금은 철없는 어머니다. 전작 ‘오자룡이 간다’ ‘내딸 서영이’ 등 숱한 작품에서 그랬다. 하지만 ‘투윅스’에서는 180도 반전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만의 악역이라 재미가 있으면서 부담도 많이 된다. 내가 정말 나쁘게 보여야 작품이 살기 때문에 악랄함을 내보이려 한다. 캐릭터에 충실할 수밖에 없지. 소리를 지를까, 아님 조곤조곤 말할까. 어떻게 하는 게 더 무서울지 계속 연구한다.”

김혜옥은 남의 행복을 무참히 묵살하면서 자신의 것만 챙기려는 인물이 자신에게 왜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 자세히 설명해줬다. 언성을 높여 남들과 다툼할 일이 있으면 “심장이 벌렁벌렁”거려 정작 하려는 말을 더듬으며 울어버리는 성격이란다. 때문에 조서희를 담아내는 데에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김혜옥의 열연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더하면서 시청률 상승을 이끌었다.

그는 함께 출연하고 있는 이준기 류수영 김소연 박하선 등 후배들에 대해 “오랜만에 봤는데 다들 말랐더라고. 매일 밤샘이니”라며 안쓰러움을 드러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산에서 달리거나 물에 뛰어들지 않잖아. 명함도 못 내밀지. 끽 소리도 못해”라며 고생하는 후배들을 걱정했다. 그러면서 “속상해 진짜. 이렇게 좋은 작품인데”라며 시청률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배우 김혜옥. 사진제공|MBC
배우 김혜옥. 사진제공|MBC

2004년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10대 소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이야기를 전한 뒤부터 “제2의 인생이 펼쳐졌다”는 김혜옥은 “내 안에서 어떤 김혜옥을 끄집어내느냐의 문제”라며 자신에게 그런 ‘푼수끼’가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어리바리한 캐릭터가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 옛날에는 멜로 주인공을 동경했지. 인생은 심오한 맛이라며. 그런데 연기해보니 삶이 극중 캐릭터에 따라 변하더라고. 인상도 그렇고, 일상의 분위기도 그렇고. 슬픈 역을 하면 평소에도 슬퍼. 예전에는 이런 캐릭터에 대해 급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드라마 끝나고 보면 밝아진 내 모습을 보며 너무 좋아. 작품을 통해 사람이 즐겁게 살 수 있는 인생의 지혜를 많이 배운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만나기 전 김혜옥은 언제 끝날지 모를 터널에 갇혀 있었다. “진짜 아팠다. 죽는 줄 알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연극 연출가와 결혼했지만 10여년 전 이혼한 뒤 병으로 떠나보냈다. 그는 “끝까지 그 사람을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어렵게 말문을 열며 미안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난 재주가 없다. 내 힘으로 여기 있는 게 아니다. 남편이 ‘연기란 이런 것이다’ 알려주고 마법처럼 홀연히 사라진 것 같아.”

7년째 맡고 있는 불교방송 DJ는 그런 그에게는 인생의 작은 힘이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괴로울 때 동생의 권유로 불교를 받아들였고 이젠 DJ가 삶의 일부가 됐다.

“어영부영 열심히 잘 살았다”는 그는 “슬픈 일이 많았지만 그런 일이 없었으면 오늘날 내가 이런 가슴 절절한 느낌을 어떻게 알았을까”라며 “연기 외에 할 게 없다”고 말한다.

“연기는 남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니냐. 그것도 핵심만 뽑아서. 연기자는 핵심보다 더 진하게 그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몫이다.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지 여전히 어렵다.”

백솔미 기자 bsm@donga.com 트위터@bsm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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