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 엉클샘, 상처 입은 거인으로 전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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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 세 가지 ‘미국의 진실’ 공개

“국민 여러분, 오늘 오후 7시를 기해 미합중국은 국제테러의 배후인 (무아마르) 카다피의 주요 군사시설 등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습니다.”

1986년 4월 14일 백악관 집무실. 카메라 앞에 선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의 표정은 단호했다. ‘파워’를 상징하는 빨간 넥타이에 군청색 양복을 입은 레이건 대통령이 당일 폭격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였던 리비아 공습을 생방송으로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미 대통령들은 저녁 황금시간대, 긴급성명 발표 형식으로 대외적 군사개입을 국민에게 알렸다. 성공적인 첫 공습 직후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앞에서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뒤로는 가족사진이 보이도록 하는 카메라 구도를 선택함으로써 인간적인 측면도 강조했다. 중대한 결단을 하지만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부각함으로써 세계 유일 ‘슈퍼파워’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제고한 것.

시리아 공습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던 지난달 31일 ‘의회 사전 승인부터 받겠다’고 발표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시리아는 오바마 대통령이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비웃었고 시리아 현지 언론은 “미국 후퇴의 역사적인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무엇이 왜 언제부터 달라진 것일까.

미국의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이 더이상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가 아닌 ‘상처 입은 거인(Wounded Giant)’이기 때문이라며 그 이유로 정치·경제·군사적인 상황 변화를 제시했다.

○ 정치적 영향력 상실

유럽 중국 인도 브라질의 부상과 함께 미국의 영향력은 약화돼왔다. 냉전 종식 이후 미소(美蘇) 양대 진영 논리가 사라지면서 ‘민주진영의 리더’ 미국의 힘은 점점 빠져나갔다. 기술의 진보도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가져왔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각종 정보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되면서 정보의 독점력도 약화됐다. 특히 오염 전쟁 분열 등과 같은 초국가적인 문제는 더이상 한 나라가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9·11테러 이후 감행된 각종 고문과 비밀 감옥 또한 미국의 도덕적 우월성을 무너뜨렸다.

○ 슈퍼파워의 강등

미국 경제가 부채에 바탕을 둔 약체로 드러나고 2011년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은 ‘달러 몰락의 서막’이라는 1면 머리기사에서 “미국 국채는 떼일 염려가 없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졌다”며 “미 국채 등급 하락은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달러 기축통화체제의 몰락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경기 호전에 힘입어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은 상향 조정됐지만, 대형 은행들의 신용등급은 오히려 강등 위기에 처했다.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금융규제 고삐를 죄는 미 정부의 금융정책이 대형 은행들의 이해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동의 ‘우방’ 이집트에 연간 13억 달러(약 1조5000억 원)의 원조를 하고 있지만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미국이 최근 이집트 군부의 유혈 시위 진압을 비판하며 원조 중단을 시사하자 군부가 이끄는 이집트 정부는 대미 외교정책을 재검토하겠다며 맞받아치고 있다.

○ 미국의 유일한 장기는 물리력 과시?

‘상처 입은 거인’이지만 미국의 군사적 파괴력만큼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포린폴리시는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군사력을 동원한) 물리적 파괴력은 미국의 주요 장기(main talent)가 되고 있다”며 2003년 이라크전쟁을 예로 들었다.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전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하지만 최첨단 군사무기와 압도적인 화력으로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9년간의 전쟁 상흔은 충격적이라고 평가했다. 전쟁 명분이던 대량살상무기(WMD)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으로 치안이 악화됐다. 민주정치 체제의 안정도 요원하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2011년 리비아 공습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단기간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주요 시설을 초토화했지만 그뿐이었다. 포린폴리시는 “미제 미사일이 시리아의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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