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위기에 강해진 한국, 장기 저성장 위기 대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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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리먼사태’ 5년]<하> 한국의 대응책과 과제

KDB대우증권 글로벌FI세일즈팀 채권딜러 정모 과장은 요즘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한국 국채를 사려는 외국인들의 문의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올해 초부터 계속됐다. 그는 “미국이 유동성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인 최근에는 조금 주춤한 편이지만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지는 인도 등 다른 아시아 신흥국과는 상황이 확실히 다르다”며 “한국을 거의 ‘유일한’ 대안시장으로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2일 1,924.81에 장을 마친 코스피는 최근 큰 폭락 없이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원-달러 환율도 1100원 선에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상황이 달랐다.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신흥국에 투자한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만기가 돌아온 차입금을 갚느라 국내 은행들은 위기 전보다 서너 배나 오른 이자를 주고 달러를 빌려와야 했다. 한국은 한동안 원-달러 환율 폭등과 외환 부족의 충격에 시달렸다. 원-달러 환율은 한때 1500원을 돌파했고 코스피는 1,000 아래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5년 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금융의 최대 약점인 단기외채 관리의 중요성을 파악해 잘 대처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진행 중인 현재의 안정은 ‘불안한 안정’이다.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데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오래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금융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 금융권 리스크 관리 역량 개선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국내 금융산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2008년 이후 은행업 감독 기준이 변하고, 금융당국의 외환파생상품 리스크 관리감독 기준이 강화되면서 국내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한층 개선시키는 계기가 됐다.

2008년 위기 당시 외신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이 크게 개선됐다. 2008년 말 118.0%에서 올해 5월 말 96.5%로 낮아졌다. 예대율이 100% 이하인 것은 대출보다 예금이 더 많다는 걸 의미한다. 외환보유액은 2008년 말 2000억 달러 수준에서 2011년부터는 3000억 달러로 1000억 달러가량 늘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는 외국계 은행에서 개발한 상품은 ‘평가’를 생략한 채 중개수수료만 받고 팔았는데 리먼 사태 이후에는 매일 가격 변동을 체크하고 공인 기관에서 평가받도록 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리스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든 돈만 수백억 원.

투자자들도 위기를 겪으면서 ‘고수익에는 고위험이 따른다’는 투자원칙을 체득했다는 평가다. 신동일 KB국민은행 대치PB센터 팀장은 “고객들이 투자상담을 할 때 이전보다 투자 위험을 꼼꼼하게 따지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 ‘대감속의 시대’ 대비해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7월호에서 ‘대감속 시대(Great Deceleration)’가 온다며 전 세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로 대표되는 신흥국 시장에서 지난 10년간 이어진 급성장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경고하면서 붙인 말이다. 10년 동안은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앞으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신흥국발 리스크가 본격화되면 한국 경제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만큼 장기 저성장 기조에 대비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저성장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융산업에서도 본격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수익원을 발굴하려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금융회사에 대해 ‘하지 말라’는 규제보다는 ‘한번 해봐라’는 식의 긍정적인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경제포럼은 2008년부터 전 세계 62개국을 대상으로 각국의 금융경쟁력을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발전지수는 2008년 19위에서 2012년 15위로 상승했지만 핵심 지표를 살펴보면 취약한 부분이 많다. 제도적 환경은 2008년 23위에서 2012년 34위, 영업 환경은 9위에서 15위로 하락했다.

전상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전략연구실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글로벌 틈새시장을 발굴해 해외 업체와 제휴 또는 합작하는 방법으로 해외 사업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수정·한우신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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