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진당과 이석기, 누굴 위해 국정원 해체하자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통합진보당이 그제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국정원의 해체를 요구하는 이른바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다. 이번 내란음모 사건의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도 맨 앞자리에 있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는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는 공당에서 소속 국회의원이 내란을 계획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했다. 옳은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로 공당의 국회의원이 조사받기에 국민이 경악하는 것이다.

통진당은 수사기관과 언론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해명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이끌었다는 지하조직의 5월 회합 녹취록이 공개된 이후에도 ‘날조와 모략’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통진당은 어제 “국정원이 거액의 돈으로 프락치를 매수했다”며 역공을 폈다. 국정원이 내부 조직원을 포섭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의 본질은 아니다.

이정희 대표는 “국정원은 한두 사람이 장난감 총을 운운했다고 내란음모로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녹취록을 제대로 읽어보기나 했는가. 동아일보가 어제 새로 입수한 녹취록에서 이석기 의원은 철탑 파괴를 예로 들며 “(우리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데 엄청난 무기가 있어서 도처에서 동시 다발로 새로운 승리를, 새로운 세상을 갖추자. 언제부터? 오늘부터 하자. 그게 첫 번째로 강조하고 싶은 주체적 ○○(정확한 발언 내용 확인 안 됨)”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이 장난감 총 운운인가.

이 대표는 “이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는 절대 불가하다”며 다른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통진당의 옛 동료인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마저 “국민은 헌법 밖의 진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수사에 당당하게 임하라”고 일침을 놓았다. 종북(從北)과 진보가 뒤섞여 진보의 가치가 퇴색했던 지난날에 대한 자성(自省)의 목소리다.

진보 진영도 통진당과 선을 긋는 마당에 민주당의 일부 강경파는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국기문란 사건의 주범으로 의심받는 인사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협상 카드로 쓴다면 수권 정당이 될 수 없다. “국정원이든, 종북 세력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번 사건을 국정원 개혁의 ‘물타기’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국정원 개혁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대한민국 내부의 종북 세력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것과 국정원을 개혁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게 만드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국정원이 뼈를 깎는 개혁을 게을리한다면 종북 세력은 국정원에 대한 불신을 숙주 삼아 언제든 되살아날 것이다.
#통합진보당#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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