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지혜]무시할 수 없는 ‘공개선언의 효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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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신 다음 날 아침에는 술 좀 줄여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한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 술 마실 건수를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결혼을 하려면 전셋집이라도 얻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짐으로 끝나고 직장생활을 한 지 3년이나 됐지만 내 월급통장은 늘 마이너스이고 건강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결심이 흐지부지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음속으로만 은밀하게 다짐하기 때문이다. 결심을 실천하고 싶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결심을 마음속으로만 은밀하게 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개인적인 목표와 결심은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만 앞세우거나 시시콜콜한 개인적 결심들을 남 앞에 털어놓는 사람은 뭔가 좀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둘째,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처럼 하면서 집에 가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학생이 많다. 은밀하게 실천해야 경쟁자들을 자극하지 않고 예상치 못한 높은 점수로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다. 셋째, 중도 포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결심을 공개했다 중도에 포기하면 체면이 구겨지고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혼자 결심하면 실패해도 비난과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결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자기가 뱉어낸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원초적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나 글로 생각을 공개했을 때 그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경향을 ‘공개 선언의 효과(Public Commitment Effect)’라고 한다.

금연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e메일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개 선언하라. 좀 더 친절한 아빠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가족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하라. 나는 좀 더 자상한 아빠가 되기 위해 딸아이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기라도 하면 이렇게 공치사를 하곤 한다. “이 세상에 아빠보다 더 자상한 아빠는 없겠지?” 그러면 내 딸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꾸한다. “우리 아빠 자화자찬은 아무도 못 말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그럼! 아빠보다 친절한 아빠는 이 세상에 없죠.” 하지만 나는 믿는다. 비록 농담조이긴 하지만 이렇게 말로 선언하다 보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가 더 자상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민규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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