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恒産 無恒心… ‘편의점 아저씨’ 결국 로펌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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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능환 前중앙선관위원장 9월 2일 ‘율촌’ 첫 출근
“법조계 일 안한다고 말한 적 없고 아내 편의점으론 먹고 살기 힘들어
생활인으로 할수 있는 일 찾은 것… 성인군자인척 살고 싶지 않아
가족에 ‘비난 쏟아질것 각오하라’ 말해”

올 3월 초 공직생활 퇴직 후 아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해 ‘편의점 아저씨’로 불렸던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62·사진)이 로펌행을 택했다. 김 전 위원장은 27일 기자들에게 “다음 달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일하기로 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란 말을 덧붙여 로펌행 배경을 어렴풋이 내비쳤다. 김 전 위원장은 1980년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된 뒤 2006년 대법관을 지내고 2011년에는 선관위원장을 역임했다.

무항산 무항심은 맹자 양혜왕(梁惠王) 편에 나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청백리(淸白吏)’의 모델로 여겨졌던 김 전 위원장은 왜 비난 여론을 감수하고 로펌행을 선택했을까. 27일 오후 김 전 위원장과 전화인터뷰를 했다.

“사실 저는 법조계 일 안 한다고 한 적 없어요. 허허.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도 어쩌다 알려져서…. 독립된 인간, 생활인으로서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죠. 집사람이 운영하는 편의점이랑 채소가게 수익이 평생 절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니기도 하고요. 아는 것도 이쪽 일밖에 없고, 다른 선택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입니다. 처지와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거죠.”

―비난 여론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발표하기 전에 두 아들한테도 “온갖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각오해라!” 이렇게 한마디 했어요(웃음). 그랬더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 길 가는 건데요”라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도덕적으로 성인군자인 척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도 거론됐지만 ‘대법관 출신이 행정부의 다른 공직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고사했습니다. 공직생활을 안 한다는 뜻은 변함없나요.

“공직생활을 안 하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변화 없습니다. 이미 끝난 결정이고 마음이 바뀔 만한 계기도 없습니다.”

―후배들이 법원조정센터장 같은 일에도 도전해보시면 어떨지 제안했던 걸로 아는데….

“하고 싶다고 맡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지만, 제가 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후배들이 하는 게 낫지 않나. 그 자리가 좋은 일은 맞는데 오랫동안 업으로 삼아 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 같고요. 로펌 쪽에서도 예전부터 제안이 오기도 했고요.”

―다른 일을 해보실 생각은….

“처음엔 다른 사업을 해볼까 했어요. 근데 벌어놓은 돈이 별로 없어서. 사업도 돈이 있어야 하더라고(웃음).”

―부인 반응은 어떤가요.

“집사람한테는 이틀 전에 말했어요. ‘당신도 당신 길 가는 게 맞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사실 편의점은 집사람 사업이지, 내 사업은 아니거든요. 장사는 고만고만해요. 너무 힘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까지 먹여 살릴 정도로 잘되는 것도 아니고. 속으로는 무료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줄어드니까 힘든 면도 있을 거예요. 아닌가. 24시간 붙어있던 사람이 없어지니 시원하려나.”

―변호사는 앞으로 평생 업이라고 봐도 되나요.

“글쎄요. 해봐야 알죠. 전반적인 로펌 일이나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게 될지 아직 몰라서 출근해봐야 알아요. 그냥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 중 한 명이에요.”

김 전 위원장은 9월 2일 첫 출근을 할 예정이다. 율촌 측은 “김 전 위원장은 고문으로 일하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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