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왕리쥔, 내 아내 짝사랑했다” 법정 진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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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26일 심리종결… 조만간 선고공판
NYT “中, 사전검열후 재판공개… 보 ‘27번 졸도’ 등 민감한 발언 삭제”

“나는 이제 감옥행이라는 재난에 빠졌다. 만감이 교차한다.”

횡령 등 혐의로 법정에 선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重慶) 시 서기는 최후 진술에서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한 심정을 토로했다. 검찰 측 증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쏟아내던 그였지만 자신의 시대가 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보 전 서기는 26일 산둥(山東) 성 지난(濟南) 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심리 마지막 날 최후 진술에서 “나는 나 자신이 매우 불완전하고 주관주의에 빠져 있으며 성질이 급하고 엄중한 과실과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또 권력과 돈이 모두 자신을 떠난 것을 한탄하듯 “이제 남은 것은 여생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리 운명에 정해져 있는 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이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보 전 서기는 지난 나흘간의 재판에서처럼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는 단호히 부인했다. 그는 쉬밍(徐明) 다롄스더(大連實德)그룹 회장이 아들 보과과(薄瓜瓜)의 유학 자금을 댄 데 대해 “아버지로서 아들을 잘못 가르친 죄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전혀 몰랐다는 기존의 주장을 강조한 것이다.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살해 사건을 은폐하려다 심복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 시 공안국장과 틀어지게 됐고, 그 결과 왕 전 국장이 미국 망명을 시도하게 됐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다시 반박했다. 그는 “왕리쥔이 도망가기 전에 그를 때리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정말 거칠었다”며 “하지만 이는 아내의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는 “뺨 한 번 때린 것으로 반역자를 만들 수 있겠느냐”며 왕 전 국장의 망명에는 구카이라이에 대한 짝사랑이라는 치정이 깔려 있다는 ‘폭탄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보 전 서기는 “왕리쥔이 아내를 짝사랑했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며 “그가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한 뒤 스스로 자기 뺨을 8차례 때리자 아내가 ‘당신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가정과 내 감정을 침범했다. 그게 망명을 시도한 진짜 원인이다”라고 강조했다. 보 전 서기는 둘의 관계를 “아교풀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如膠似漆·여교사칠)”고도 묘사했다.

한편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은 26일 방청객과 법원 관련 인사 등을 인용해 법원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공개한 재판 내용 중 보 전 서기에게 동정적인 내용이나 정부에 부정적인 발언이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언론에 따르면 보 전 서기는 법정에서 “내 인생은 이미 비극이 됐고, 구카이라이의 삶도 마찬가지”라며 “이 조사를 그만 끝내 달라. 마지막 남은 가족 간의 정을 쥐어짜는 것도 이제 멈추길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구카이라이가 미쳤다”라는 식의 발언만 소개했다. NYT는 보 전 서기가 당 중앙기율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 수백 번 심문을 당했고 27번 졸도했다고 전했다.

22일 시작된 이번 재판 심리는 닷새 만인 26일 오후에 끝났다. 법원 측은 조만간 선고 공판 날짜를 지정해 형량을 정한다고 밝혔다. 중국 형사소송법은 심리를 마친 뒤 최장 3개월 안에 선고 공판을 열도록 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판은 1, 2주 후 바로 열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보시라이#왕리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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