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는 정치인]<15>7개월 넘게 ‘미래한국 탐구’ 손학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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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좌절은 없다”… 독일서 ‘마지막 도전’ 로드맵 구상

민주당 손학규 상임고문(66)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갑작스럽게 큰형수상(喪)을 당해 23일 오후 독일에서 급히 귀국하자마자 빈소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성당으로 달려온 손 고문은 통곡했다고 한다. 10남매의 막내로, 어렸을 때 모친을 여읜 손 고문에게 큰형수는 어머니나 다름이 없었다.

24일 빈소에서 만난 손 고문은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손학규계 의원들은 “손 고문이 2017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 측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는 의욕이 강하다. (대선에서) 세 번이나 좌절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 김한길도, 안철수도 “손에 손 잡자”

민주당 김한길 대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24일 잇따라 빈소를 찾았다. 10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손 고문의 손길을 바라는 야권의 셈법과 맞닿아 있다.

김 대표는 오후 5시경 손 고문을 만나러 왔다. 그는 서울시청 앞 광장 장외(場外)투쟁과 관련해 “이번 여름은 특히 더워서 ‘손 고문이 대표로 계실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무효화 장외투쟁을) 겨울에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했던 분들은 ‘그것도 아니다’고 하더라”며 전현직 대표로서 동병상련의 기억을 부각시켰다. 손 고문은 묵묵히 웃기만 했다.

30분 뒤 방문한 안 의원은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뒤 자신의 집으로 축하 난을 보내 준 손 고문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 상황이 지난해 대선 때보다 훨씬 열악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다. 고문님 혜안이 필요할 때”라며 우회적으로 구애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손 고문은 “나는 그냥 쉬고 있으니까… 독일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지에 대한 참고의 기회를 얻고 있다”고만 했다.

안 의원과의 연대설은 4·24 재·보선 때부터 끊이지 않아 왔다. 그러나 손 고문은 6월 독일을 방문한 손학규계 의원들에게 “지금은 민주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 밖을 기웃거릴 때가 아니다”며 줄기차게 민주당 중심론을 강조했다. 당시 손 고문을 만났던 한 인사는 “손 고문은 ‘내가 어떻게 안철수 신당에 가나’라고도 하더라”며 “손 고문이 독일 연수에서 가장 먼저 연구한 주제도 ‘유럽의 제3정당 성공과 실패’였다”고 했다. 손 고문이 유럽에서조차 제3정당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손 고문 측 관계자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지 않았나. ‘또 어디로 옮긴다고…’ 하는 시선에 부담을 갖고 있다”고 했다.

○ 의미심장한 통합과 연대 발언

손 고문은 빈소에서 만난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정치적 언급은 삼갔지만 독일의 통합 정신은 강조했다고 한다.

우원식 의원이 24일자 동아일보 커버스토리 ‘왜 일본은 독일과 정반대의 길을 갈까’를 언급하자 손 고문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폴란드에서 과거 나치 저항운동을 했던 희생자들에게 속죄하는 것이 통합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런 정신이 독일을 만들었다”고 했다. 또 “비스마르크와 사민당은 적대적 관계였지만, 사민당의 이념과 정책 기반인 복지국가의 문을 연 것은 비스마르크”라고도 했다. 다음 달 22일 독일 총선과 관련해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집권을 계속할 확률이 90%인데 집권 여부보다 어떤 당과 연대하느냐가 쟁점”이라며 ‘정책연대’에 관심을 보였다.

손 고문은 요즘 독일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복지, 환경, 노동, 에너지, 정치구조 등이 미래 한국의 밑그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손 고문은 1월 15일 독일에 도착한 뒤 전문가들을 만나고 현장을 견학할 때마다 두툼한 대학노트에 내용을 쓰고 있다. 복지 문제에 대해서는 각종 수치를 외울 정도가 됐다고 한다.

손 고문과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은 “(손 고문이) 10월 재·보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했다.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김영철 대표는 “2017년 대선의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보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인 듯하다”고 말했다. 종합해 보면 즉각적인 정계 복귀보다는 다시 차기 대선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들이다.

2007년 5월 기자들이 뽑은 ‘바람직한 대통령’으로 선정될 만큼 손 고문은 식자층에서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혔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의 정치학 교수, 4선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 상품성과 진정성은 다른 정치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손 고문은 2007년과 지난해 두 차례 대선에서 본선도 아닌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손 고문 측 양승조 최고위원은 “손 고문의 대중성이 뛰어났다면 경선 룰이 아무리 불리했더라도 벽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절실하게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인력이나 조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손 고문의 숙제는 대중적 지지도를 올리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손 고문의 대중성 부족을 엘리트주의와 연결짓는 측근들도 적지 않다. 한 측근은 “선비의 고민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균형감 있게 갖춰야 하는데 결단이 필요할 때는 체통, 원칙을 따지고 멈칫하면서 ‘고민하는 서생(書生)’ 이미지가 부각됐다”고 말했다.

7개월여 독일 체류 기간 중 손 고문은 그런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깊이 반성한 듯하다고 한 측근은 전했다.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지도자로서) 사람들 선두에 서는 것만이 아니고, 그들과 동행해야 한다고 깨달은 것 같다”고도 했다.

손 고문은 26일 발인이 끝난 뒤 다시 독일로 떠나 현지 생활을 정리하고 다음 달 하순 귀국할 예정이다. 과연 어떤 정치적 메시지와 화두를 던질까.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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