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전주 한옥마을, 슬로시티 재인증 아슬아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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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시설 305곳… 3년만에 3배 늘어
아기자기한 골목길 정취 사라져… 전주시 “관리개선등 상업화 지연 추진”

전주 교동 도심에 기와집 700여 채가 모여 있는 전주한옥마을. 연간 5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지만 최근 지나친 상업화로 전통의 의미를 잃어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전주 교동 도심에 기와집 700여 채가 모여 있는 전주한옥마을. 연간 5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지만 최근 지나친 상업화로 전통의 의미를 잃어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DB
‘넘치는 인파, 유명 업소마다 길게 늘어선 줄, 심각한 숙박 및 주차난···.’

이곳이 ‘슬로시티’가 맞나 싶다. 연간 500만 명이 찾는다는 전주 한옥마을 얘기다. ‘느리지만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뤄 산다’는 슬로시티의 기본 정신은 간데없다. 구불구불 좁다란 골목길의 아기자기한 정취도 사라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상업시설 때문이다. 2015년으로 다가온 슬로시티 재인증을 받는 데도 비상이 걸렸다.

○ 자고 나면 생기는 카페와 음식점

전주시에 따르면 한옥마을 일대 상업시설은 총 305곳이다. 한옥마을의 기와 한옥이 700채이니 한옥 두 채에 하나는 상업시설인 셈이다.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될 당시 100여 곳에 불과했던 상업시설이 3년 만에 3배가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 시설들은 음식점 55곳, 커피숍 28곳, 전통찻집 17곳, 공예공방 70곳, 숙박시설 68곳 등이다. 젊은 여성들이 친구나 가족과 가장 가고 싶은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방을 구하기 어려울 만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자 한옥을 개조하거나 빈터에 상업시설이 속속 들어선 결과다. 더구나 대부분 가게가 아크릴 간판과 휘황한 조명을 내걸면서 전통 이미지와 부조화도 심각하다.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생활형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도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3.3m²(1평)당 1000만 원이 넘게 가격이 치솟으면서 외부 상업자본이 밀고 들어와 돈이 없는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상황이다. 한옥마을에 30여 년째 살고 있는 김모 씨(49)는 “자고 나면 새 가게가 생겨나 나도 어지러울 지경이다”며 “이 상태로 가면 과연 지속 가능성이 있을지, 지금이 ‘상투’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 슬로시티 재인증도 비상

2015년 슬로시티 재인증 심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전남 장흥군과 신안군이 재인증 심사에서 각각 퇴출·보류됐기 때문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슬로시티 재인증 심사 결과 장흥군은 탈락하고 신안군 증도는 1년간 인증이 보류됐다. 2007년 국제슬로시티로 인증된 두 지역은 재심사 준비 부족과 함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이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흥군은 일부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상업화돼 영리를 추구했고, 신안군 증도는 연륙교가 설치되면서 섬으로서 정체성을 잃고 외지인이 급증하면서 환경이 파괴돼 가는 점이 재인증에 걸림돌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문화와 고유음식을 보호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한다는 슬로시티의 기본 정신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온 주부 이모 씨(42)는 “전통음식을 잘 보전하고 있다며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지정된 전주 한옥마을에서 커피와 빙수 가게가 가장 성업 중이라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주시는 한옥마을과 어울리는 건축을 유도하기 위해 건축물 높이와 층수를 하향 조정하고 담과 대문의 기준 규격을 마련해 전통 이미지와 고유성을 확보하는 등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상업시설을 원상복구하거나 신축을 원천 차단할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해 당분간 상업시설 확산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전주시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전주 한옥마을의 상업 기능을 제한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슬로시티 자격을 잃지 않도록 한옥마을 관리 운영 정책을 개선하는 등 강력한 정책으로 상업화를 늦추겠다”고 말했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한옥마을#슬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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