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바친 우승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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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최강전 제패 이민형 高大감독

이민형 고려대 농구부 감독(48·사진)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서른여섯의 나이에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뒤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1960년대 농구 국가대표 센터로 활약한 이경우 씨였다. 은퇴 후 아버지는 1970년대 초반 고려대 감독으로 있다 세상을 떠났다.

이 씨의 2년 선배로 대학과 실업팀에서 함께 운동했던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는 “원래 혈압이 높았는데 고려대 감독을 하면서 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시절 이 씨에게 발탁돼 실력을 키운 김동광 삼성 감독은 “당시 고려대 농구가 어렵던 시절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다”고 말했다.

201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40년 만에 고려대 지휘봉을 잡은 이민형 감독은 22일 끝난 프로 아마추어 최강전에서 우승한 뒤 눈물을 쏟았다. “오랜 침체기를 겪은 고려대 농구가 프로들과 대등하게 싸워 정상에 오른 게 감격스럽습니다.” 멀리서 응원을 보냈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도 컸다.

이민형 감독 부임 전 고려대는 4년 가까이 해마다 감독이 바뀌는 내홍을 겪으며 부진에 허덕였다. 그동안 이 감독은 팀 내 파벌을 없애고 자율적인 훈련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특급 선수 스카우트에 공을 들이는 한편 약점으로 지적된 가드 라인 보강에도 힘을 쏟았다. 지난해부터는 미국 전지훈련으로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이 감독의 전술이 스며들면서 고려대는 끈질긴 수비와 빠른 공수 전환으로 팀 컬러를 바꿔 나갔다. 고려대는 간판스타 이종현과 이승현, 이동엽도 이 감독과 같은 농구 2세여서 ‘바스켓 가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농구공을 잡은 이 감독은 용산중과 용산고 시절 동기 허재 KCC 감독과 함께 정상을 질주한 뒤 태극마크도 달았다. 지도자로도 성공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정작 그는 “고생한 선수들 덕분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겸손해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이민형#고려대#농구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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