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4시간 파업이라지만… 우린 영원히 폐업할 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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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車 협력사 수만곳, 파업에 눈물
“노조 요구 딴세상 같아” 박탈감도 커

“파업요?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합니다. 또 얼마나 머리를 싸매야 할지….”

20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포승국가산업단지 내 자동차 부품업체 삼기오토모티브. 자동차 엔진과 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만드는 곳으로 현대·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다. 근로자 400여 명이 일하는 공장 안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 회사 김남곤 사장은 요즘 한숨을 쉴 때가 많다. 며칠 전부터 들려오는 원청업체의 파업 소식 때문이다. 현대차는 20일부터 이틀간 하루 4시간의 부분파업을 시작했다. 기아차도 21일부터 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삼기오토모티브의 월 매출액은 약 150억 원. 이 가운데 현대·기아차를 통한 매출 비중은 75%(약 112억5000만 원)이다. 파업이 길어지면 올해 초 세웠던 생산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일감이 끊겨도 곧바로 공장을 세우진 않겠지만 기약 없이 재고를 쌓아둘 수는 없다.

김 사장은 “우린 그래도 규모가 되는 편이라 (현대·기아차가 파업을 해도) 버틸 수 있지만 진짜 문제는 2, 3차 협력업체들”이라고 말했다.

○ 협력업체 수만 곳에 직격탄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업체는 삼기오토모티브를 포함해 약 390곳이다. 2차 협력업체는 5000여 곳. 3, 4차 협력업체는 수만 곳이다. 현대·기아차는 수만 곳의 제조업체로 구성된 국내 자동차산업 공급사슬의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완성차업체는 1차 협력업체들이 생산한 굵직한 부품이나 모듈(여러 개의 부품을 조합한 것)을 받아 차를 만든다. 1차 협력업체는 2차 협력업체로부터, 2차는 3, 4차로부터 더 작은 부품을 받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회사 규모는 영세해진다.

그렇다고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한 대에는 약 2만5000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그중 하나만 없어도 생산이 어렵다. 극단적으로는 3, 4차 협력업체가 만드는 손톱만 한 부품 하나가 없어 차를 못 만드는 ‘서플라이 체인(공급사슬)’ 붕괴도 가능한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2차 협력업체인 한신정공은 생산제품 전량을 삼기오토모티브에 공급한다. 이 회사의 월 매출액은 3억 원, 공장 직원은 40여 명이다. 현대차 ‘그랜저’와 기아차 ‘쏘렌토R’ 등에 들어가는 누유 방지 케이스를 생산해 삼기오토모티브에 공급한다. 다른 거래처가 없다 보니 현대·기아차가 생산을 중단하면 직원들 월급을 주기도 어려워진다.

이 회사 최영수 사장은 “우리 정도 규모의 업체는 파업으로 하루만 공장을 돌리지 않아도 엄청난 타격이 온다”며 “현대·기아차 일감이 없으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영세업체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 “같은 자동차산업 종사자인데…” 박탈감도

삼기오토모티브 공장에서 만난 근로자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를 보면 과연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처음엔 부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당황스럽다가 요즘엔 아예 다른 세상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근로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대·기아차 근로자의 가족 중에는 협력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파업으로 일감이 끊기면 그들이 먹고살 길도 막막해진다는 걸 한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한 협력사 근로자의 말이다.

평택=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현대차 파업#협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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