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버냉키 붐에 취해 개발-투자 붐… 파티 끝나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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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시장도 출렁 인도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확산돼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21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국내 금융시장도 출렁 인도의 금융위기 가능성이 확산돼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21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약 20년 만에 엄습할 조짐을 보이는 신흥국의 외환위기는 낮은 이자로 달러 빚을 얻어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한 경제개발 패턴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시중에 푼 천문학적인 달러를 빗댄 용어인 ‘버냉키 붐’에 취한 신흥국이 경제구조 개혁을 게을리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을 휩쓸었던 외환위기 원인 분석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와의 차이점은 이번에는 한국 경제의 체력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등에서 튼튼해 보인다는 것이다.

○ 전문가들이 보는 신흥국 위기

신흥국 외환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인도의 증시는 21일(현지 시간) 루피화 약세로 인해 약 11개월 만에 최저점을 찍었다. 이날 인도 센섹스는 17,905.91로 1.86% 내려 지난해 9월 11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루피화 가치 또한 이날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영은행과 신탁은행들의 미 달러 매입이 급증하면서 달러당 루피 환율은 전날보다 1.9% 오른 64.44루피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달 들어 8.92%까지 치솟았다. 유로존 위기가 한창일 때 국채 금리 7%가 국가 부도의 심리적인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것을 감안하면 인도의 현재 위기 상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도와 함께 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터키의 과도한 부동산 개발 붐을 지적하면서 미 연준이 푼 돈으로 파티를 벌여온 신흥국들이 이제 뒷감당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터키로 유입된 외자(外資)는 1720억 달러(약 192조3000억 원)로 터키 경제의 22%를 차지한다. 1994년과 2001년 터키의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아틸라 예실라다 글로벌소스파트너스 경제학자는 “터키의 경제성장은 해외 차입과 터키 리라화의 가치 상승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단기외채를 끌어 쓴 터키는 최근 정정 불안으로 경제구조 개혁에 손을 놓고 있었다.

인도 터키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패턴은 해외 투자자들이 싼 금리로 달러를 빌려 미국 유럽 일본보다 경제성장 여력이 높은 신흥국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했다는 점. 미 연준의 출구전략으로 금리가 상승하자 빌린 돈의 이자가 오르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투자한 신흥국의 성장률이 둔화되는 악재가 겹치면서 일제히 달러 빼기에 나섰다.

투자자들이 달러를 회수하면 외자 의존도가 높고 경상수지 적자가 큰 국가들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인도와 터키가 대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또 몇 년 새 신용부채가 급증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도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HSBC에 따르면 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09년 55%에서 최근 80%에 육박했다. 말레이시아도 빚으로 소비를 늘리고 주택 붐을 일으켰으나 수출 부진으로 10년간 유지한 흑자에서 올해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통상 외환위기가 양적팽창에서 긴축으로 돌아선 뒤 수년간 지속된 점에 초점을 맞추며 이번 신흥국의 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다만 20년 전만큼 부채 비율이나 해외차입 비율이 높지 않고 외환보유액도 많이 쌓아놓은 만큼 재앙으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 한국은 예외?

신흥국발 금융위기 우려 여파로 국내 주식시장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0일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와 한국은 상황이 전혀 다른 만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1997년, 2008년에는 주요 외신이 한국 경제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지만 최근 한국을 위기징후국과 엮어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7월 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 대비 대외부채는 30% 중반으로 13개 신흥국 평균값보다 낮다. 같은 시기를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은 3297억1000만 달러(약 369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신수정 기자 witness@donga.com
#신흥국#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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