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時총괄 기관, 軍에서 黨으로 권력이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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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전시사업세칙’ 개정 주요 내용

북한이 지난해 9월 개정한 전시(戰時)사업세칙에는 유사시 김정은 체제를 보위하고, 남한 내부에 혼란이 발생할 경우 종북 세력의 요구를 구실로 무력도발을 시도하겠다는 북한 수뇌부의 대남전략이 드러나 있다. 북한에서도 극비로 분류되는 이 문건엔 전시상태의 선포 시기와 목적, 선포 주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한편 군당정(軍黨政) 예하 모든 기관의 전시 체제하 임무와 역할을 담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의 전시사업세칙 개정에 향후 김정은 정권이 체제 위기에 직면할 경우 전쟁 분위기를 극대화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남한과 국제사회를 협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만큼 김정은 체제의 명운(命運)에 북한 수뇌부가 조바심을 내는 한편 사활을 걸고 있다는 얘기다.

전시사업세칙이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당 중앙군사위)에서 작성한 전쟁 대비 문건으로 전시상태 선포와 전시 지휘계통을 명문화한 것이다. 우리의 충무계획(비상대비계획)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절대비밀(극비)’로 분류돼 있으며 지금까지는 북한이 2004년 4월 제정한 ‘전시사업세칙을 내옴에 대하여’라는 문건만 알려졌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지고 2003년 3월 이라크전쟁이 시작되면서 위기의식이 높아진 북한이 전쟁 준비상태를 일제 점검한 뒤 전시사업세칙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한 것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체제가 구축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7월 이영호 총참모장을 전격 경질하는 등 측근 중심으로 군부 인사를 재편하는 한편 전투 준비태세도 일신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이 과거 작성한 전시사업세칙과 지난해 개정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시 선포 시기’를 처음으로 명기했다는 점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2004년 4월 작성된 전시사업세칙에는 전시 선포 목적과 방법, 전시 지도기관 등이 자세히 나와 있지만 전시 선포 시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전시 선포 시기는 북한의 대남 전략과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핵심 단서라는 점에서 북한이 노출을 꺼렸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판에서 북한은 전시 선포 시기를 세 가지 유형으로 명시했다. 우선 미국(미제)과 한국(남조선)이 대북 침략전쟁을 기도하거나 무력 침공을 가할 경우를 전시 선포 시기로 규정했다. 대북 소식통은 “키리졸브(KR),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같은 한미 연합 군사연습이나 서해상 포격훈련 등 한국군의 훈련을 빌미 삼아 군사 도발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군 단독훈련과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의 전면남침 등을 상정한 방어훈련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한미 대북 침공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 더욱이 대규모 미 증원전력을 포함한 한미 연합전력을 상대로 전면전을 치른다는 건 북한으로선 ‘자멸행위’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한미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려 한다기보다 그만큼 한미 연합군사력을 두려워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남조선 애국역량’이 (북한에) 지원을 요청하거나 국내외적으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경우를 전시 선포 시기로 규정한 것도 눈길을 끈다. 남한 내 종북 세력이 주도하는 반미시위나 집회가 전국적 규모로 확대되고 정부의 대응 과정에서 대규모 폭력사태나 유혈충돌 등 극심한 혼란이 야기될 경우 이를 지원하는 한편 대남 무력통일의 호기로 활용하겠다는 속내로 읽힌다. 북한이 ‘남조선 혁명은 남한의 혁명세력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 같은 구태의연한 대남혁명전략을 여전히 고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제와 남조선이 국부지역에서 일으킨 군사적 도발행위가 확대될 때’를 북한이 전시 선포 시기로 규정한 것은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대규모 국지전이나 전면전 양상으로 번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한국이 상응표적 타격계획(북한이 서울을 공격하면 한국군은 평양을 보복 타격하는 군사대비책)을 수립하는 등 대북 응징전략을 강화한 것에 대한 맞대응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국과 미국이 2년여간 협의를 거쳐 올해 3월 합의한 대북 공동국지도발대비계획을 염두에 둔 측면도 엿보인다.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도발을 하면 한국군뿐 아니라 미군 전력도 보복 응징에 참가해 도발 원점과 지원, 지휘세력까지 격멸하겠다는 이 계획에 맞서 ‘강대강(强對强)’ 대응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전시상태 선포의 주체가 종전의 ‘최고사령부’에서 ‘당 중앙위, 당 중앙군사위, 국방위, 최고사령부 공동’으로 바뀐 것도 주목된다. 군 소식통은 “당정군을 아우르는 김정은의 위상을 공고화하면서 최고 권력기구들이 협의해 결정하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전시사업세칙과는 별도로 북한이 최고존엄 모독 등을 준(準)전시사업세칙으로 규정한데 대해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앞으로도 한반도 긴장 극대화를 노리고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최고존엄 모독 등을 들어 언제든지 준전시상태를 발령하고, 실제 도발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전시사업세칙#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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