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된 돈… 깜박한 돈… 무려 1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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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 지났는데 안찾아간 연금저축 15만계좌 5323억
상속인도 모르는 금융자산 5000억 육박

최근 퇴직한 50대 이성훈 씨(가명)는 지난달 은행에서 우편물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만기가 된 연금저축이 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까맣게 잊고 있던 연금저축이 떠올랐다. 19년 전 30대에 매월 5만 원씩 넣다가 납입을 중단했던 연금상품이었다. 복권 맞은 기분으로 은행을 찾았더니 100만 원이 쌓여있었다. 그는 “알고 보니 은행에서 몇 번이나 돈을 찾아가라고 우편을 보냈다는데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몰랐다”며 “갑자기 용돈이 생겨 정말 반갑다”고 말했다.

실제 주인을 잃고 헤매는 돈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연금저축 상품은 물론이고 사망자의 유족이 찾아가지 않는 돈,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낸 휴면예금과 신용카드 포인트 등이 금융회사 곳곳에 잠들어 있다. 휴면예금은 거래 중지 계좌로 지정되고부터 5년 후, 휴면 보험금은 계약중단 및 만기 2년 후에 금융회사로 넘어가고, 그 뒤에 고객이 요청하면 환급받을 수 있다. 연금저축은 기간 제한 없이 고객이 찾을 수 있다.

○ 주인 찾지 못한 연금저축액 5323억 원

연금저축이 대표적이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만기일이 도래한 연금저축계좌 총 33만 건 가운데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계좌가 14만7931건으로 전체의 약 45%였다. 적립금으로 따지면 5323억 원이다.

고객이 찾지 않은 계좌의 80.9%가 120만 원 미만의 소액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월급을 쪼개 조금씩 넣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잊은 계좌가 많은 것.

1994년경 구형 개인연금에 가입했던 안모 씨(58)가 대표적인 사례. 100만 원 미만의 금액을 최근에야 찾은 안 씨는 “워낙 소액이라 내가 가입했던 상품이 연금저축이었는지 단순 적금이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며 “은행에서 우편을 몇 번이나 받고 나서야 연금저축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주인 잃은 ‘미아’ 연금저축이 유독 많은 이유는 장기상품이다 보니 고객 연락처가 변경돼 금융사가 만기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호연 금감원 금융서비스개선3팀장은 “구형 개인연금 판매가 시작된 1994년엔 휴대전화를 안 쓰는 사람이 많아 집 전화로 연락해야 하는데 이사를 가버리면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금융사들이 미수령 계좌를 고객에게 통지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도 원인으로 꼽는다.

○ 상속인들이 잊고 있는 돈도 상당액


상속인들을 기다리고 있는 금융자산도 상당하다. 충청남도에 사는 A 씨(60)는 존재를 몰랐던 2억 원을 2년 전 손에 쥐었다. 사별한 아내의 보험가입 내용을 우연히 조회하다 3개 보험사에서 거액의 보험금을 받게 됐다. 아내가 보험 가입 사실을 A 씨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 음식점을 문을 닫고 수입 없이 지내던 그에게 새 출발의 계기가 됐다.

금감원이 2000∼2010년 신고된 사망자 270만 명의 은행 및 증권계좌를 전수 조사한 결과 2011년 3월 말 기준으로 인출되지 않은 금융자산은 5000억 원에 육박했다. 최근 들어 금융기관에는 사망자의 금융자산을 알아보려는 상속인의 문의가 늘고 있다. 사망자 명의의 자산을 찾아주는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서비스’ 이용건수는 2011년 5만2677건에서 2012년 6만1972건으로 늘었고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3만3636건이나 됐다.

고객이 찾아가지 않아 휴면예금으로 처리된 금액, 신용카드 포인트 등도 늘어나고 있다. 박대동 새누리당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객이 찾지 않아 금융사 수입으로 넘어간 휴면예금 및 보험금, 기프트카드액, 신용카드 포인트 총액은 2008년 1850억 원에서 2011년 3874억 원으로 늘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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