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용석]미친 기업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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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산업부 기자
김용석 산업부 기자
4년 전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연구소를 취재한 적이 있다. 미국 시애틀 교외 벨뷰에 자리 잡은 특허전문기업 인텔렉추얼 벤처스(IV)의 연구소다. 이곳 회의실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4평 남짓한 회의실엔 20명쯤 앉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게이츠가 가운데 앉으면 공학 엔지니어와 물리학자, 화학자, 수학자 등이 둘러앉는다. 다른 한편은 특허 출원 전문 변리사들의 자리다.

회의 테이블에 오르는 건 그야말로 ‘거대한’ 주제들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방법, 아프리카의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방법, 허리케인 피해를 줄이는 방법 등 유엔 총회에서나 다룰 만한 것들을 논의한다.

이들은 지상에서 우주로 긴 호스를 연결한 뒤 작은 입자를 뿌려 햇볕을 가리는 식으로 지구의 온도를 낮추자(StratoShield)고 제안하는가 하면, 말라리아 모기를 쏘아죽일 레이저 총이 달린 담장(Photonic Fence)도 개발했다. 카리브 해에 찬물을 부어 허리케인을 없애겠다는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왔다.

사람들은 ‘기발하다’거나 ‘엉뚱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미친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어쨌든 게이츠의 해법은 인류의 생각을 조금 진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특허 보유 목록도 늘렸다.

최근엔 엘론 머스크가 발표한 진공튜브 열차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튜브를 진공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저항을 최소화한 뒤 태양열 배터리를 단 전기모터로 달린다는 멋진 아이디어였는데, 시속 1220km로 달린다는 것 외에 자세한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다. 페이팔을 창업해 큰 부자가 된 뒤 폼 나는 전기자동차와 우주화물 회사를 차리는 데 돈을 쏟아 부은 이 남자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행동으로 ‘현실 속 아이언맨’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계곡물이 건강에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설악산 계곡과 서울시를 연결하는 거대한 수도관을 고안했다. 부하 직원에게 헬리콥터를 내주며 전국 주요 도시와 전국 산의 계곡을 파이프로 연결할 방안을 찾아내라고 한 지시는 아직도 그룹 내에선 전설로 전해진다.

때때로 기업가들은 몽상가 같다. 편집증 환자 같다. 쉽게 말해 미친 것 같아 보인다. 상식을 넘어 새로운 상식을 만들고, 최고를 넘어 또 다른 최고를 만드는 것이 기업가의 숙명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고 인류의 문제를 푸는 기업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기업가들은 조금 다른 고민을 하는 듯하다.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기자에게 “수십억 원을 기부하든 수백억 원을 기부하든 아무리 사회공헌을 해도 사람들은 전혀 감흥이 없다”며 반(反)기업 정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많은 기업의 수뇌부는 상식을 깨는 사업 아이디어 대신 정부의 동향이나 세계 시장의 흐름만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심한다.

우리 기업가들이 이런 일만 되풀이하다가 진짜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영영 까먹을까 봐 내심 걱정이 된다.

김용석 산업부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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