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보육 정부지원 늘려야” 버스-지하철 광고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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市 “관련 예산 3708억 부족” 주장… 1000만원 들여 대중교통 홍보전
경기침체에 지자체 세수 부족도 영향… 일각 “예산으로 일방 광고 부적절”

“무상보육을 쭉 이어갈 수 있도록 국회의원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십시오.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은 계속돼야 합니다.”

서울 시내버스에서는 이달 13일부터 이 같은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안내 방송의 ‘광고주’는 다름 아닌 서울시다. 무상보육 재원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는 서울시가 최근 정부에 재정지원 비율을 높여 달라는 대국민 홍보전에 돌입한 것이다.

서울시는 13일부터 시내버스 350개 노선에 걸친 음성안내, 1∼4호선 지하철 내 동영상 홍보, 포스터 및 스티커 부착, 그리고 시 소유 전광판 90여 개를 통해 정부가 당초 약속대로 무상보육에 대한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광고(사진)를 내보내고 있다. 시내버스 지하철 전광판 등은 공익광고로 분류돼 비용을 내지 않고, 포스터 제작 등에만 1000만 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광고는 지방자치단체에 재정 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는 정부의 약속과 서울시 재정 상태의 한계를 부각시키면서 대통령의 ‘통 큰 결단’과 국회의 조속한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포스터와 스티커에는 ‘서울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무상보육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서울시가 이같이 시민을 대상으로 광고전에 나선 이유는 예산 부족으로 무상보육 정책의 파행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회는 올해 1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무상보육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무상보육 대상을 0∼5세 영유아 전체로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때문에 서울시의 무상보육 대상 영유아는 21만 명에 이르러 기존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서울시는 “현재 무상보육 비용은 국가가 20%, 서울시가 80% 부담하는 구조로 돼 있어 무상보육에만 예산 3708억 원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상보육 비용 부담 비율을 40%(국가), 60%(서울시)로 조절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와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이달 9일 무상보육 지원대책 회의를 열고 “개정안이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시민 설득을 위한 홍보활동을 벌이자”는 내용에 합의했다.

무상복지 예산을 둘러싼 논란은 지자체와의 세밀한 예산 조율 없이 정부가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화됐다. 경기 침체와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지자체 세수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취득세 수입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경기도에서도 최근 무상급식 예산 삭감 문제를 두고 도와 교육청이 대립하는 등 무상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전국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다. 경기도가 15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무상급식 관련 예산 860억 원을 삭감하기로 결정하자 훨씬 많은 예산을 대고 있는 교육청은 “경기도의 수많은 사업 중 무상급식을 가장 먼저 삭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반드시 무상급식은 지속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의 형태와 폭에 대한 여야, 좌우, 시민들 간의 의견 차이가 첨예한 사안에 대해 서울시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 일방적인 시의 주장을 광고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이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오세훈 전 시장 재임 시절인 2010년 12월 무상급식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일간지 광고를 시 예산으로 게재해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나 지자체가 정책홍보 광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시민 생활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정책을 널리 알리거나, 교통·안전 등 시민의식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캠페인 등에 국한되어야 한다. 더구나 시내버스처럼 누구나 선택의 여지 없이 광고를 접해야 하는 장소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세금을 동원해 어느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광고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서울시#무상보육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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