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46>삼 분 전의 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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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분 전의 잠
―이장욱(1968∼)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모래들 내 잠 속에 쌓이고 있었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그때 그 오래된 눈빛은 우연한 것이었으나 아, 이런 바람은 괜찮은데, 모든 우연을 우리는 미리 알고 있었네 삼 년 전의 문 열리고 삼십 년 전의 그대, 마른 등 보이네 눈뜨면 그때인 듯 상한 눈발 날리고 모래처럼 우연한 노래들 내 잠 깊은 모래산, 모래산에 쌓이네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그곳에 오래 앉아 있었으나 깔깔한 모래들 아직도 내 잠 속 떠나지 않네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기슭을 배회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독백을 기억하는 자 그리고 모래산 바람 부는 그대의 모래산

화자는 ‘삼 분 전의 잠에서 깨어 삼 일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 삼 일 전의 잠에서 깨어 삼 년 전의 잠을 추억하는 자’다. 삼 분, 삼 일, 삼 년은 시간의 물리적 분량을 말하는 게 아니다. 늘 그렇다는 것! 화자는 늘 추억 속에 사는 사람이다. 추억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 추억의 늪 같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 화자의 가슴에 쌓이고 쌓인 쇳가루 같은 모래알들, 빡빡한 슬픔의 응어리. 슬픔이 깊으면 불면증에 걸리거나 해일 같은 잠에 휩쓸리게 된다. 화자는 그 막막한 졸음, 사무치게 슬픈 추억에 붙들려 있다. 그는 헤어날 생각이 없다. ‘나는 더, 계속, 영원히 고통 받아야 해!’ 슬픔의 고통에서 헤어나는 게 더 고통인, 그런 추억은 죄책감 때문이다. 아니, 슬픔에서 벗어나는 건 추억이 희미해진다는 것, 추억이 희미해진다는 건 ‘그대’를 기억의 저편으로 멀리 멀리 떠나보낸다는 것. 화자는 그러지 못해, 그러기 싫어, 다른 꿈이 들어찰 공간이 없는 잠, 황량한 모래산에 가곤 하는 것이다. 먼지투성이 부스스한 털로 배회하는 개처럼.

‘용서를 빌러 그곳에 갔네’, 리듬감 좋고! 도입부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리듬감이 시의 맥을 매력적으로 이어준다. 어쩌면 화자는 삼 일 전에 실제로 그곳에 갔을 테다. 삼 년 전에 누군가의 몸이나 마음을 묻은 그곳에.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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