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원전비리 걸고 넘어지는 경쟁국들… 한국, 핀란드 원전수주전 또 밀리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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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경제부 기자
문병기 경제부 기자
“국제 원자력발전소 수출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것을 넘어 제2의 중동붐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09년 12월 27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성공한 직후 청와대는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UAE 원전 수출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1977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원전의 가동을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세계 6번째 원전 수출국가에 이름을 올렸다. 그야말로 일대 사건이었다. 이듬해인 2010년 정부는 2030년까지 80기의 원전을 수출해 ‘세계 3대 원전 수출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3년여가 지난 현재 UAE 원전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원전 시험성적서 위조에서 출발한 원전 비리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UAE 원전 수출을 둘러싼 로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UAE 원전 수출에 참여한 한국정수공업과 현대중공업 등의 금품 로비 혐의가 드러나면서 UAE 정부가 이들 업체가 납품하기로 한 설비를 교체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UAE 원전 수출 조건 가운데 하나였던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도 당초 약속에 비해 크게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은이 제시한 금리가 UAE 정부 예상보다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원전 업계에서는 수은의 금융지원 축소로 향후 원전 수출 과정에서 한국의 금융조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터키 원전 입찰 경쟁에서 한국이 일본에 밀린 것도 원전 건설을 위한 대규모 자금을 낮은 금리로 조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한국형 원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뢰도는 한번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 한국이 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들을 제치고 UAE 원전 수주를 따낸 것은 높은 국산화율을 무기로 경쟁국에 비해 수출 단가를 낮추고 공사기간을 단축한 덕분이다. 하지만 원전 비리 사태로 한국형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 같은 강점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올해 초 입찰에 참여할 때만 해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으로 평가됐던 핀란드 원전 건설 사업에서도 경쟁국들이 원전 비리를 문제 삼으면서 한국은 벌써부터 뒤처지는 분위기다. UAE 원전 수출 이후 요르단, 리투아니아, 터키 원전 수출에 잇달아 고배를 마신 한국으로서는 핀란드 원전 수출 성사 여부가 명실상부한 원전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는 중대 고비다. 핀란드 원전 수주 결과는 내년 입찰에 들어갈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입찰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전 업계는 원전 비리 사태는 안전성과는 별개라고 강변한다. 일각에서는 원전 비리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여론이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면서 어렵게 구축한 원전 산업 생태계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불만 섞인 반응도 나온다.

어느 정도까지는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금품 로비와 민관(民官) 유착으로 쌓아올린 원전 신화는 언제든 무너질 위험을 안고 있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야말로 원전 수출 대국으로 재도약하는 길의 출발선이라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원전비리#원자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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