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국정원 댓글 수사 CCTV 대화’ 분석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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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왜곡 이유 없다” 해명에도 ‘고의 편집’ 의혹 여전히 남아

검찰이 6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 발표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직원들의 대화 내용 일부를 편집했다는 논란에 대해 19일 해명 자료를 내놨지만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검찰이 기소 내용에 맞춰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대화 내용을 짜깁기했다는 여당 및 경찰의 주장과 이에 대한 검찰의 반박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본보는 19일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석실 CCTV 동영상을 입수해 분석했다.

▶본보 17일자 A6면 檢, 경찰청 CCTV자료 편집 논란

검찰은 6월 14일 수사 결과 발표 당시 경찰이 증거 분석 결과의 인멸을 시도했다는 혐의의 방증자료로 ‘이 문서 했던 것들 다 갈아 버려’라고 적힌 녹취록 일부를 공개했다. 하지만 본보가 동영상을 확인한 결과 이 대목은 ‘여기 문서 쓸데없는 것들 다 갈아 버려’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이 ‘쓸데없는’을 ‘했던’으로 바꾼 채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다.

또 검찰은 발표자료의 ‘증거 분석결과 축소·은폐 모의’ 항목에서 “‘그거다’는 우리 다 같이 죽자는 거예요”라는 ‘분석관2’의 말을 공개했다. 검찰이 공개한 대화록을 읽으면 분석관들이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을 은폐하는 순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영상 확인 결과 이 말은 “‘이럴 거다’는 안돼요. ‘그럴 거다’는 다 같이 죽자는 거예요”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럴 거다, 그럴 거다 식으로 대충 추정하면 위험하므로 심증이나 추정은 배제하자는 취지의 대화였던 것이다. 이에 앞서 분석관들은 “그게 그렇다고 어떻게 확신해요” “확신은 못하죠”라는 대화도 나눴다.

검찰은 또 “(서울청 분석관들이) 중요증거인 ID·닉네임을 확인한 상황에서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대화를 나눴다”며 “피곤하죠? 한 시간이면 끝나겠죠”라는 분석관의 말을 공개했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분석관들은 “피곤하죠?∼” 대목을 발언하기에 앞서 “엑셀 그거 6만 건이 넘어가지고…”라는 말을 했다. 경찰 측은 검찰이 앞의 말을 삭제한 채 공개해 엑셀 작업이 아닌 모든 분석 작업이 한 시간이면 끝나는 것으로 오인하게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 당시 ‘국정원 직원 노트북에서 선거 관련 글 확인’이라는 제목하에 “오, 오. Got it(분석관 1)” “뭔데요?(분석관 2)” “저는 이번에 박근혜 찍습니다(분석관1)”라는 사이버수사대 직원 2명의 대화 내용 녹취록을 배포했다. 검찰 발표 자료만 보면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29)가 “저는 이번에 박근혜 찍습니다”라고 쓴 글을 사이버수사대원들이 발견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당시 사이버수사대원들은 김 씨가 작성한 글을 발견한 게 아니라 김 씨가 ‘저는 이번에 박근혜 찍습니다’라는 내용의 인터넷 게시글을 읽은 기록을 확인한 것이었다.

검찰은 19일 일부 언론이 “오, 오. Got it”이라는 표현이 녹취록에 없었다고 보도한 데 대해 “진술녹화 3실과 4실의 녹취록이 있는데 이 중 4실 CCTV 영상에 이 말이 그대로 녹음돼 있다”며 오보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법정에 동영상과 녹취록 전체를 제출하게 되어 있는 만큼 왜곡이나 편집을 할 수 없고, 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보 확인 결과 검찰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녹취록 내용을 일부 편집해서 발표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설령 발표문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한 건 아니라는 검찰의 주장을 백 번 양보해 받아들인다 해도 검찰이 이번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녹취록 등 자세한 정황을 공개한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 인멸 정황은 수사 결과 발표 때 공개하지 않고 실제 재판 때 양측의 공방이 벌어지면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조종엽·유성열 기자 jjj@donga.com
#사이버수사대#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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