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비보잉보다 쉬웠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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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계 ‘갑툭튀’ 비보이 출신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

재즈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가 비보이 자세를 취하려다 말았다. “아, 참. 좀 그럴 것 같네. 그래도 지금은 색소폰 연주자인데….”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재즈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가 비보이 자세를 취하려다 말았다. “아, 참. 좀 그럴 것 같네. 그래도 지금은 색소폰 연주자인데….”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김오키(본명 김영훈·35)는 요즘 한국 재즈음악계의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을 가리키는 인터넷 속어)다. 김오키의 연주를 들은 재즈 연주자들은 그가 비유학파임에 먼저 놀라고, 비(음악)전공자임에 또 한번 놀라며, 비보이와 가요 백댄서 출신임을 알고 나면 마침내 반문한다. “정말?”

최근 자유분방하고 난해한 프리 재즈(자유즉흥을 기반으로 재즈의 문법을 해체한 재즈) 앨범 ‘동양청년’을 낸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는 그 인생 이력서부터가 ‘재즈’다. 19일 오후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오키는 “비보잉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었지만 지금은 음악으로 춤을 추고 있다”며 웃었다.

어려서부터 힙합과 록을 좋아했고, 고3 때 친구를 통해 서울 이태원의 댄스 클럽에 드나들면서 춤에 빠져들었다. 대학 진학 생각은 없었다. 서울 신길동 지하연습실에서 종일 춤췄다. “추다 배고프면 과자나 라면을 먹었고, 다시 추다 잠깐 바닥에 엎드리면 그게 쪽잠이었죠. 깨면 다시 췄고요.” 고교 졸업과 함께 대중가요계에 진출했다. 그룹 뉴 투투, 구본승, 젝스키스의 백댄서로 무대에 섰다.

남들은 프로 연주자로 나서는 스물다섯 살에야 김오키는 재즈음악이란 것을 처음 듣기 시작했다. “춤출 때도 댄스 음악에 섞여드는 관악기 소리가 듣기 좋았는데 이정식, 존 콜트레인의 음악을 접하면서 색소폰에 완전히 빠져서 배우기 시작했죠. 음악이 춤보다는 쉽더라고요.” 악기란 걸 배워본 적이 없던 그이지만 비보잉에 빠졌을 때처럼 지독한 연습으로 돌파했다. “잠자리에서도 색소폰을 들고 누운 채로 운지(運指)를 하다 잠에 빠져들었어요.”

2009년부터 작은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지만 스튜디오 녹음 경험조차 전무했던 그는 지난해 말 베이스 연주자 김성배와 함께 소규모 음반사 ‘일일’을 차린 뒤 자비를 들여 이번 음반을 제작했다.

조세희의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테마가 됐다. 2번(‘꼽추’), 3번(‘칼날’), 4번(‘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5번(‘영희마음 옥희마음’) 곡은 연달아 아예 ‘난쏘공 조곡(組曲)’이다. “좋아하는 작가인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곡을 쓰리라 마음먹었지만 우연히 ‘난쏘공’을 다시 읽고 방향을 돌렸어요. 소외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꼭 담아야겠다는 맘을 먹었죠.” 앨범의 영문 제목은 ‘천사의 분노(Cherubim's wrath)’다.

‘오키’란 예명은 일본 오키나와에서 따왔다. 오키나와의 풍광과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그곳 사람들이 맘에 쏙 들어서다. 음반 수록곡 ‘오리온 스타 하우스’에는 오키나와의 전통 노래와 파도소리도 담았다. “얼핏 듣기엔 난해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듯 있는 그대로 음악을 느껴보세요. 오히려 스탠더드 재즈보다도 쉬운 게 프리 재즈예요.”

다음 달 7일 충북 괴산뮤직페스티벌, 14일 서울 합정동 복합문화공간 무대륙, 10월 4일 울산재즈페스티벌 무대에서 김오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오키#재즈 색소폰#비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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