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택시금융, 버스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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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월세를 밀려 현금이 부족하면 곗돈을 타거나 동네 상인들에게 급전을 구한다. 돈을 더 융통할 수 없을 때 ‘러시앤캐시’에서 빌린다. 고금리 대출을 갚으려 대포통장(불법명의 통장) 업자에게 돈을 받고 이름을 빌려주면 며칠 뒤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다.”

27년째 도심 철거지역의 빈민을 연구하고 있는 조은 동국대 교수는 저서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대부업자에게 돈을 빌린 채무자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의 표현처럼 우리 사회의 대부업체는 ‘고금리 급전’이나 ‘대포통장’과 같은 부정적인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

모든 대부업자를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길이 꽉 막힌 금융 소외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대부업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부업 대출의 85%는 신용등급 7∼10등급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이뤄졌다. 대부업 이용자의 57%는 고졸 이하의 저학력자다. 채무자의 57%는 병원비 등 긴급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대부업체를 이용했다.

이명박정부는 ‘서민금융 3종세트’(미소금융, 햇살론, 새희망홀씨)를, 박근혜정부는 원금의 70%를 탕감해 주는 국민행복기금을 내놨다. 그런데도 대부업체를 찾는 발길은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은행권 당기순이익이 전년대비 23.2% 줄어든 사이, 대부업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24.8% 늘었다.

금리 수준이나 신뢰도나 비교가 안 되는 정부의 서민대출과 잘나가는 대부업체의 경쟁력은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갈린다. 포털 사이트에서 금융감독원의 ‘서민금융 119’ 서비스를 찾으려면 대부업체, 저축은행의 광고링크를 한참 넘겨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대선 일주일 전인 2012년 12월 12일을 끝으로 미소금융에 대한 어떤 보도자료도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햇살론 대출이 늘어나자 당국은 ‘너무 과하게 취급한다’며 대출 자제를 주문하고 나섰다.

정부가 서민금융을 소홀히 하는 사이,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는 스스로를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금융서비스’라고 말하며 24시간 대출상담을 해 준다. 대출금리도 최고 연 39%에서 20%대로 내리고 연대보증도 없앴다. 겉으로 보면 누가 진정한 서민금융 서비스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다.

“버스랑 지하철만 탈 수 있나. 바쁠 땐 택시도 타는 거지.”

러시앤캐시 TV 광고문구다. “은행이나 카드 놔두고 왜?”라는 광고 속 여자친구의 질문에 멋쟁이 샐러리맨 남자는 “(택시처럼) 쉽고 간단해서”라고 대답한다. 이 회사는 자신들의 대출을 ‘이자는 조금 비싸지만 편하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라고 광고한다.

갈 길 급한 서민이 버스를 탈지 택시를 탈지는 알아서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노선도 하나 제대로 붙여놓지 않고 “급하면 택시 타든가”라며 빈 버스를 운행하는 건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택시 타는 사람에게 ‘돈을 함부로 쓴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택시보다 편리한 대중교통망을 갖추는 데 힘썼는지 되물을 일이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대출#대부업체#고금리#서민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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