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염재호]일본은 부활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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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적 행정개혁과 역사 무시한 우경화정책으로 민심 잡으려는 아베정권
중국의 강력한 반발과 경고음 커지는 아베노믹스 등 국내외 현실적 한계로 일본 부활 전망은 밝지 않아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달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정권은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그 기세를 몰아 아베 신조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각료들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엔화 약세 정책과 재정 확대를 골간으로 하는 아베노믹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언뜻 보면 아베 총리의 지도력으로 강한 일본이 부활하는 것 같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1980년대 전 세계는 일본이 세계 제일이 될 것이라고 떠들었다. 하버드대 에즈라 보겔 교수의 ‘Japan As No.1’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1985년 미국과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강세 현상으로 거품경제가 나타났고 1990년대부터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세월을 흘려보내 왔다. 반대로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통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2개국(G2)이 되고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일본 국민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은 냉소적으로 변했다.

정치권은 비난을 피하려고 일본 국정 운영의 잘못을 관료들에게 돌렸다. 거시적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기보다 신자유주의의 시대 조류에 편승해 포퓰리즘적 행정 개혁에 몰입하면서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려 애썼다. 이제는 이웃을 무시하고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면서 우경화의 포퓰리즘으로 민심을 달래려는 것이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열린 한일미래포럼에서는 흥미롭게도 한일 양국의 전문가들이 서로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한국인 전문가들은 일본 국민이 보수적인 아베 정권을 지지해 일본의 우경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일본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는 헌법 개정이나 집단적 자위권 확보 등과 같은 우경화 이슈 때문이 아니고 아베노믹스라는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정치인들이 경제 활성화를 약속하면서 민심을 오른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보수 정객들의 우경화 전략은 많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이미 8월 15일 아베 정권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중국은 군국주의와 침략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에 대해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책임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뼈있는 요구를 했다. 주변국뿐만 아니라 아사히신문 주필을 지낸 와카미야 요시부미 씨도 개헌은 중의원과 참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헌법 9조 개정, 특히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자는 아베 총리의 주장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도 처음과는 달리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현재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245%에 이르는 일본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활성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하는 아베노믹스를 전문가들은 우려하기 시작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칠 아베노믹스의 실패 후유증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려는 소비세 인상도 무리수다. 일본 정부는 현재 5%의 소비세를 내년 4월에 8%로 올리고 2015년 10월에 10%로 올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시장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은 마당에 대기업만 유리해진다고 강하게 반발할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 같은 총리라고 인기가 높았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도 1987년 5% 소비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다음 선거에서 참패했다. 5% 소비세 도입이 정착되기까지는 오히라, 다케시타, 우노, 하시모토 총리가 소비세 때문에 줄줄이 선거에서 참패하고 사임해야만 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아무리 정치적 포퓰리즘을 통해 일본 국민의 자존심을 높이려 해도 현실적으로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일본 정치가들은 우경화 정책으로 국민의 자존심은 달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적 손실이라는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엔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 수출에서 호조를 기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나타났다. 정치적 우경화로 인해 중국인의 대일 감정이 악화하면서 일본의 대중국 수출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올 상반기 대중국 수출액은 작년에 비해 한국이 11.5%, 대만이 36.9% 늘어난 데 비해 일본은 13.8% 줄었다고 한다. 앞으로 3년 안에 중국 진출 일본 기업의 절반 정도가 철수할 계획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새로운 일본을 만들려는 과감한 시도는 국내외의 현실적 한계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런 딜레마들로 인해 일본 부활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aehoyeom@icloud.com
#아베정권#경제 활성화#우경화정책#아베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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