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권모]통계 vs 직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배우 톰 행크스가 젊었을 때 출연한 ‘빅(Big·1988년)’이란 영화가 있다. 열두 살 난 개구쟁이 소년 조시는 어느 날 순회 곡마단 구경을 갔다가 소원을 들어주는 기계를 발견한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빈 다음 날 아침, 소년은 30세의 어른이 되어 깨어난다. 이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장면 중 하나는 ‘아이’와 ‘어른’의 대결이다. 조시는 장난감 회사 마케팅 담당자들이 수백 페이지의 보고서와 함께 가져온 기획 아이디어를 어린아이의 감성으로 단번에 압도해 버린다.

▷통계 수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숫자놀음’은 경험에서 나온 통찰력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쉽게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간과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장 높이 사줄 것 같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사실 숫자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는 올 2월 세계 최초로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한 드라마 시리즈를 내놓았다.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란 이름의 이 정치 드라마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배우(케빈 스페이시)를 영입했다. 그리고 고객들이 어떤 장면을 좋아하고, 무엇을 다시 돌려 보는지, 어떤 장면에서 드라마 감상을 중단하는지 등을 분석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드라마를 제작했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올해 1분기에만 300만 명이 신규 회원으로 가입했다.

▷많은 사람은 천재들이 데이터 없이 직관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거캠프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후 내린 결론은 ‘빅데이터를 이용한 선거 전략을 짜야 한다’였다. 물론 통계는 부정확할 수 있다. 하지만 통계를 정확히 이용하는 힘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미리 알 수 있다. 통계청이 물가와 실업률 등 현실과 따로 노는 일부 통계를 개선한다고 한다. 통계청이 ‘자수’를 했지만 지금까지 이런 중요한 수치의 통계에 대한 불만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많은 사람이 그러고 있는 사이 숫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여러 가지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른다.문 권 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문권모 소비자경제부 차장 mikemoon@donga.com
#통계#직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