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예방백신 품귀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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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건보 적용대상 아니다” 관망… 접종비 치솟아 환자들만 발동동

60대 여성 권모 씨는 최근 병원으로부터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으려고 기다린 지 두 달 만에 연락을 해서는 가격이 올랐다는 거였다. 당초 18만 원 정도였던 백신 값이 30만 원이 됐다고 했다. 그는 백신이 2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간호사의 재촉에 울며 겨자 먹기로 주사를 맞았다. 그는 “백신을 구하려고 병원을 10군데도 넘게 돌아다녔다. 이제는 웃돈을 줘도 약을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60대 남성 정모 씨도 서울에서 백신을 취급하는 이비인후과, 내과 10여 곳에 예약금 1만 원씩을 내고 석 달가량 기다렸지만 아직 주사를 맞지 못했다. 정 씨는 최근 병원에 들렀다 간호사들끼리 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화가 치밀었다. 그는 “약이 귀하다 보니 병원 사람들이 가족, 친지들부터 맞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돈 없고 백 없는 서민들은 어디에다 하소연해야 하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부터 국내에 공급되기 시작한 대상포진 예방백신이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가격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종합병원에서는 13만 원, 의원에서는 18만 원 정도면 맞을 수 있는 백신 접종비가 껑충 뛰어올랐다. 심지어 노인들 사이에서는 ‘병원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백신을 구할 수 없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대상포진은 건강한 노인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피로 스트레스 등이 쌓이면 일상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도 발병할 수 있다. 척추를 중심으로 작은 수포와 물집이 생기며 발병 부위에 신경성 통증이 아주 심하다. 심하면 감각 이상이나 두통, 호흡곤란이 오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환자 수가 2008년보다 37.4% 증가했다. 특히 폭염이 계속되는 여름철에 환자가 급증했다.

스트레스 관리, 영양 섭취 말고는 별다른 대비법이 없었지만 지난해부터 백신이 국내에 공급되면서 예방이 가능해졌다. 백신은 발병을 50% 이상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신경통 발생 가능성도 60∼70% 줄인다. 대한감염학회는 60세 이상 노인에게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다. 대상포진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도 백신을 맞으면 재발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국내에 공급되는 백신은 한국엠에스디의 조스타박스주 단 한 종류다. 문제는 백신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약 3만 도즈(1인에게 공급되는 양), 올해 약 7만 도즈가 공급됐지만 시중에 물량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정부는 백신 품귀사태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품목이기 때문에 가격 관리를 할 수 없다는 태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는 국가필수예방접종 15종을 제외하고는 관리 책임이 없다”고 밝혔다. 백신 허가와 유통 관리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시장논리에 따라 가격이 좌우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장은 “백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도 일반 의약품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유통 관리에 나서 누구든지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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