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필 다음 용팝이라고… 봤죠? ‘병맛’의 힘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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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용팝, 간단치 않은 B급 걸그룹의 성공기

5인조 걸그룹 크레용팝 멤버들(왼쪽부터 소율 금미 엘린 초아 웨이)이 착용한 트레이닝복과 헬멧에 그어진 ‘두 줄’은 상징 코드다. 세계적인 브랜드 아디다스의 ‘세 줄’에 대한 저항과 ‘우린 B급’이라는 선언이 함께 담겼다. (트레이닝복: 인터넷쇼핑몰. 상하의 합쳐 약 5만 원. 헬멧: 서울 충무로 오토바이 전문점. 3만∼4만 원 선)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5인조 걸그룹 크레용팝 멤버들(왼쪽부터 소율 금미 엘린 초아 웨이)이 착용한 트레이닝복과 헬멧에 그어진 ‘두 줄’은 상징 코드다. 세계적인 브랜드 아디다스의 ‘세 줄’에 대한 저항과 ‘우린 B급’이라는 선언이 함께 담겼다. (트레이닝복: 인터넷쇼핑몰. 상하의 합쳐 약 5만 원. 헬멧: 서울 충무로 오토바이 전문점. 3만∼4만 원 선)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한국어로) 귀요미∼∼!” “가와이이(‘귀여워’라는 뜻의 일본어)∼∼!”
16일 오후 2시 22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후문 앞. KBS 2TV ‘뮤직뱅크’ 녹화장 밖에서
한국 가수들을 보기 위해 기다리던 일본 여성 팬 20여 명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머리에 하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교리닝’(교복과 트레이닝복의 합성어로
크레용팝 특유의 무대 의상)을 입은 다섯 명을 알아본 것이다.
“가와이이! 크레용팝! 귀요미!” 5인조 여성 그룹 크레용팝(엘린 소율 금미 초아 웨이)이
이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근처 카페에 멤버들과 둘러앉았다.
멤버 초아가 테이블에 올려둔 헬멧 안쪽 상표 부분에 ‘초아 꾸∼(초아의 것)’라 적혀 있다.
자기 것을 구분하기 위해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다.
헬멧 안쪽을 만져 보니 눅눅한 열기가 전해진다. 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거의 이걸 쓰고 다닌다니까…. 》

요새 ‘올해 용필(조용필) 다음은 용팝(크레용팝)’이란 얘기가 있다. 헬멧과 교리닝을 착장한 다섯 명이 ‘점핑! 예! 점핑! 예!’를 외치며 두세 명씩 번갈아 제자리 뛰기 하는 ‘직렬5기통 춤’은 자동차 엔진 실린더의 피스톤 운동을 떠올린다. 6월 발표와 함께 음원 차트 상위권에서 사라졌던 ‘빠빠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에서 유아적인 춤과 노래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차트 정상권까지 두 달간 ‘역주행’했다. ‘병맛’(인터넷에서 인기를 누리는 B급 취향)의 힘이다. ‘용팝’을 따라다니는 ‘팝저씨’(크레용팝의 아저씨 팬들)의 열성도 화제다. 직렬5기통 춤을 다양하게 패러디한 ‘개레용팝’ ‘구라용팝’ ‘노라용팝’ 같은 사진과 동영상도 쏟아진다.

소셜미디어 분석회사 트리움의 이종대 이사는 “‘빠빠빠’의 성공은 기존 가수나 기획사의 SNS 마케팅을 뛰어넘는 굉장히 잘 짜인 전략의 승리”라고 말했다. 그는 “한 곡에 대해 조금씩 변형된 여러 콘텐츠를 생산해 온라인에서 동시다발적인 버즈(입소문)를 일으켰고, 콘텐츠 제작에 댓글의 피드백을 그때그때 반영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고 했다. 트리움에 따르면, 지난달 트위터에서 크레용팝의 하루 평균 언급량은 700건 수준이었지만 이달 들어 3000건 수준으로 올랐고 빌보드닷컴이 관련 기사를 내보낸 것이 알려진 15일엔 2만1000여 건까지 늘었다.

크레용팝의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이 직접 화제를 생산하는 포털 역할을 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들은 서울 홍익대 앞과 동대문에서 해온 길거리 공연 영상 같은 것을 꾸준히 업로드해 왔다. 뒤늦게 팬이 된 사람들이 소비할 일종의 ‘히스토리’와 ‘맥락’을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소속사에서 이런 영상에 직접 센스 있는 자막도 입힌다. 대형 기획사의 기획회의에서는 나올 수 없는 ‘날것’의 직관이 시대를 관통한 것 같다”고 했다.

‘용팝’은 시작부터 좀 달랐다. 늘 가수를 꿈꿨지만 피부과에서 모낭분리사 일을 하다 마지막 도전을 한 금미, 대학 실용음악과를 나와 홍익대 앞 인디 밴드에서 작곡과 노래를 하던 웨이, 쇼핑몰 피팅 모델을 하던 엘린, 인터넷 얼짱 출신 소율…. 소속사 크롬엔터테인먼트는 멤버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특정 가사에 어울리는 셀프 카메라 사진을 오늘 내로 10장씩 메시지로 보내라’ 같은 미션을 던져줬고, 실패하면 근처 학교 운동장 50바퀴 뛰기 같은 벌칙도 줬단다.

‘병맛’을 자처한 괴짜 천재집단일까, 히트곡 하나로 반짝 스타로 그치고 말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일까. 어쨌든 용팝은 지금 크게 한 방 날렸다. 타구는 아직 날아가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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