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개척자 동방신기, 日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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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19일 07시 00분


“이제 다시 시작이다!” 동방신기가 17·18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동방신기 라이브 투어 2013-타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번 공연에 7만2000 관객을 동원하며 새 기록을 세웠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이제 다시 시작이다!” 동방신기가 17·18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에서 열린 ‘동방신기 라이브 투어 2013-타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이번 공연에 7만2000 관객을 동원하며 새 기록을 세웠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 해외가수 첫 닛산스타디움 공연

일본 5대 돔 투어 등 총 18회 라이브 공연
85만 관중 동원…입장권 매출액만 950억
오사카·교토 등 38개 영화관서 생중계까


동방신기(유노윤호 최강창민)가 한류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동방신기는 17·18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스타디움(구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에서 최신 앨범 ‘타임’ 발표를 기념하는 ‘동방신기 라이브 투어 2013-타임’의 피날레 무대에 올라 이틀간 14만4000명을 불러 모았다. 해외가수로는 첫 번째 닛산스타디움 공연이자 비즈 스마프, 엑스재팬, 서던올스타즈 등 일본 가수를 통틀어서도 13번째 주인공이다.

닛산스타디움은 일본에서 공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시설로 꼽힌다. 돔 공연의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는 스타디움 공연은 그야말로 ‘꿈의 무대’. 동방신기의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실감케 한다.

앞서 4월부터 사이타마 슈퍼아레나를 시작으로 삿포로돔, 나고야돔, 후쿠오카 야후!저팬돔, 오사카 교세라돔, 도쿄돔 등 5대 돔 투어를 벌였던 동방신기는 이번 닛산스타디움까지 모두 18회 공연으로 약 85만 명을 동원했다. 2005년 7월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일본 3개 도시에서 아카펠라 시연회로 2500명의 팬들을 만났던 일본 첫 라이브와 비교하면 340배의 눈부신 성장이다.

첫날 공연은 17일 오후 5시30분 열렸다. 동방신기는 길이 95m, 높이 22m의 초대형 무대와 그라운드 객석을 감싼 돌출무대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3시간 동안 26곡을 들려주며 7만2000 관객과 교감했다. ‘안드로이드’ ‘스틸’ ‘휴머노이즈’ ‘오 정반합’ 등 기존 히트곡 외에도 각각의 솔로곡 ‘티 스타일’, ‘록 위드 유’를 준비했고, 9월4일 내는 일본 싱글 ‘스크림’도 처음 공개했다. 최대 규모 공연장답게 여느 무대에서는 볼 수 없던 장관이 연출됐다. 공연 전 모든 관객에게 지급된 손목시계형 발광체가 그 열쇠였다. 공연 중반 공연장에 어둠이 깔리자 모든 관객의 손목에서는 7만2000개의 빛이 형형색색으로 공연장을 수놓았다. 시시각각 일사불란하게 변하는 조명은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일체감을 안겼다.

유노윤호는 “최고의 추억이 되었다”며 팬들에게 감사했고, 창민은 “동방신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늘었다”며 감격했다. 공연이 끝나자 작은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일본 도쿄돔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닛산스타디움에 동방신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일본 도쿄돔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닛산스타디움에 동방신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물결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이튿날인 18일 공연은 오사카, 교토,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 일본 전국 38개 영화관에서 생중계됐다. 이번 스타디움 공연을 보지 못하는 팬들의 뜨거운 요청에 따른 것이다.

이번 닛산스타디움 2회 공연의 입장권 매출액만 160억8768만원(14억1120만엔)이며, 5대 돔 투어까지 합하면 18회 공연으로 약 949억6200만원(83억3000만엔)을 기록했다. 2005년 5월 ‘스테이 위드 미 투나잇’으로 일본 시장에 데뷔한 동방신기는 이렇게 8년 만에 ‘급’이 다른 가수로 성장했다.

동방신기는 케이팝의 역사를 쓰고 있지만 차분했다. 유노윤호는 공연 후 “처음 일본에 오면서 창민이와 ‘차근차근 올라가자’고 했는데, 약속을 지킨 것 같아 기분 좋다”고 했다. 그리고 “동방신기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더 열심히, 진심으로 무대에 오르겠다”고 말했다.

‘케이팝’이란 단어도 없던 시절, 갖은 고생을 이겨내며 지금의 케이팝의 토대를 닦은 동방신기는 자만하지 않는 ‘개척자’였다.

요코하마(일본)|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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