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식당 착한이야기]경남 남해 전복죽집 ‘삼다도 해물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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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직접 딴 전복 한마리 풍덩… 다른 고명 필요없죠”

경남 남해에서 ‘삼다도 해물집’을 운영하는 박명석(오른쪽) 김화선 씨 부부가 전복죽과 전복 요리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둘은 매일 오전 자연산 전복과 해삼 멍게 등을 딴 뒤 이를 당일 식사로 제공하고 있다. “자연산 전복은 비린 맛이 없고 씹을수록 고소하다”는 게 이들 부부의 얘기다. 남해=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경남 남해에서 ‘삼다도 해물집’을 운영하는 박명석(오른쪽) 김화선 씨 부부가 전복죽과 전복 요리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둘은 매일 오전 자연산 전복과 해삼 멍게 등을 딴 뒤 이를 당일 식사로 제공하고 있다. “자연산 전복은 비린 맛이 없고 씹을수록 고소하다”는 게 이들 부부의 얘기다. 남해=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고향 제주를 떠나 뭍으로 나온 지 20년이 됐지만 형편은 별로 나아지질 않았다. 남편은 큰 어선 작은 어선 가리지 않고 바다에서 일했다. “돈 벌면 데리러 오겠다”며 제주 어머니 집에 맡겨 놓은 큰아들은 아직 데려오지 못했다. 그새 또 아들이 태어났다.

1980년대 초 제주에서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항으로 이사 온 박명석(60) 김화선 씨(52) 부부의 형편은 2000년대 초반까지 그랬다.

남편이 바다에 나간 사이 김 씨는 남해 앞바다로 물질을 다녔다. 한 달에 20일 이상은 하루 서너 시간씩 꼬박 물질을 했다.

남해 앞바다 8∼10m 해저에서 건져 올린 자연산 전복은 그야말로 ‘상(上) 중의 상품’이었다. 대부분 내다팔았다. 남편이나 자녀 생일 때 큰맘 먹고 한두 번 죽으로 끓이곤 했지만 웬만하면 참았다. 그만큼 생활이 어려웠다.

자연산 전복을 듬성듬성 썰고, 내장도 잘게 으깬 뒤, 불린 쌀에 넣어 30∼40분 저으며 정성스레 끓여 낸 전복죽은 소금만 넣어도 진하고 고소했다. 단백질과 칼슘 인 등 무기질이 풍부하다는 것은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냥 최고의 맛이었다. 냉동 전복이나 전복과 육질이 비슷한 고둥을 사용한 체인점 전복죽과는 차원이 달랐다. 친척 또는 신세를 진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끔 끓여 주었다. 찬사가 쏟아졌다.

“전복죽 장사나 해볼까?”

올 3월 16일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X파일’에서 제25호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삼다도해물집’은 2001년 이렇게 탄생했다.

재료 떨어지면 바로 문 닫아


식당은 미조면 북쪽 항구인 미조북항 포구와 가까운 좁은 골목길 안에 있다. 섬이었던 미조면에 가려면 몇 개의 연륙교를 거쳐야 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풍광을 즐기면서 가노라면 길 옆 곳곳에는 죽방멸치 가게가 즐비하다. 죽방멸치와 굴, 전복 등 각종 수산물이 풍부해 사람들은 연근해 양식이나 숙박, 식당 일을 하며 산다.

식당은 오후 2시인데도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좁은 주방에서 열심히 죽을 쑤고 있는 50대 초반의 아낙. 갯물과 바람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 TV에서 봤던 김 씨였다. 옆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설거지하는 남자는 남편 박 씨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막내아들 민우 씨(23)도 방학을 맞아 식당일을 거들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 말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포구 구경이나 하며 1시간 후 다시 찾기로 했다. 주변 식당 몇 곳도 전복죽을 파는 곳이 있으나 손님은 삼다도해물집만 못했다.

1시간 반쯤 지났을까, 다시 찾은 식당은 그새 문이 닫혀 있었다. 출입문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재료가 모두 떨어져 오늘은 전복죽을 판매할 수 없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 봤다. 식구들끼리 식당 한쪽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전날 손질해 내장과 함께 냉장고에서 숙성시켜 놓은 전복 재료를 모두 팔았다고 했다. 이날 다녀간 손님은 130여 명이었다.

“자연산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두 사람이 제주에서 낯선 남해로 이사 온 것은 1980년대 초다. ‘벌어먹기’에는 뭍이 낫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바다를 터전으로 생계를 이어 갔다. 남편 박 씨의 어머니는 제주 구좌읍 앞바다에서 일흔 살 넘게 물질을 하며 살았다. 누나는 지금도 해녀다. 아내 김 씨의 친정어머니도 시집온 뒤부터 해녀생활을 했다. 큰언니 인선 씨(62)는 서귀포에서 40년 가까이 해녀생활을 한 ‘대상군’(실력이 경지에 다다른 해녀)이다.

“채널A에 나오기 전에는 매일매일 바다에 들어가도 몸이 피곤하지 않았어요. 방송에 나가고 손님이 서너 배로 늘어난 뒤부터 오후에는 너무 힘들어요.”

김 씨는 매일 오전 남해 바닷속 8∼10m로 들어가 전복과 해삼, 멍게, 문어, 군소, 소라를 딴다. 3시간쯤 물질을 마친 뒤 식당으로 돌아오면 낮 12시경. 갓 따온 해산물은 손질해 그대로 식탁 위에 올린다. 그래서 식당 문은 오후 1시경 여는 경우가 많다.

방송이 나간 뒤로는 주말과 휴일엔 오전부터 손님들이 식당 앞에서 진을 친다.

“마누라가 따온 자연산 전복만으론 손님 감당이 안 돼요. 그렇다고 멀리서 찾아오신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순 없고….”

박 씨 부부는 2001년 식당을 개업한 뒤 지금까지 100% 자연산 전복만 고집해 왔다. “양식은 껍데기가 약간 초록색을 띠고 있는데, 자연산은 거무스레하면서도 약간 빨간색을 띠고 있어요. 맛은 확실히 다르지. 양식을 자연산이라고 속이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박 씨는 “바닷속에서 4∼6년 자란 자연산은 아무렇게나 요리해도 비릿한 맛이 없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며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만 제공하다 보니 지금까지 자연산만 고집하게 됐다”고 했다.

가격은 1인분에 1만 원. 일부 프랜차이즈 죽집에서는 양식 전복 또는 육질이 전복과 비슷한 고둥을 넣은 죽을 1만5000∼1만8000원에 판매한다.

주인장의 배려로 시식 기회가 찾아왔다.

먼저 문어숙회와 군소 멍게 몇 점이 나왔다. 죽을 쑤는 데 30∼40분은 걸리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입이 심심할까 봐 내놓은 것이다. 죽 1인분에는 주먹만 한 자연산 전복 1개가 다 들어간다. 시중 가격으로 개당 6000∼7000원짜리다. 죽은 전날 내장과 함께 숙성시킨 전복 살, 불린 쌀과 참기름, 소금만을 넣는다. 쌀은 12년째 같은 사람에게서 구입한다. 참기름도 집 앞 방앗간 양복심 씨(37)한테만 맡겨 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복죽 한 그릇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흐물흐물해진 밥알은 은은한 연둣빛을 띠었다. 전복 내장을 함께 넣었기 때문이다. 부채 모양의 전복 살도 보인다. 젓가락으로 ‘휙휙’ 저으며 내용물을 훑어봤다. 전복과 멥쌀 참기름만이 눈에 띌 뿐이다. 비릿한 맛과 부족한 향을 덮기 위해 사용하는 김 가루, 빈약한 양을 부풀리기 위한 표고버섯 칩과 소라 살 같은 것은 없었다.

전복 내장은 생으로 먹거나 익혀도 씁쓸한 맛이 나는 법. 하지만 입안에 사르르 퍼지는 죽 맛은 고소하고 구수한 맛을 냈다. 자연과 시간만으로 빚어 낸 맛이다.

‘착한식당’ 선정되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워

방송 이후 이 집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손님이 부쩍 늘었다. 방송 직후 한 달가량은 전국에서 몰려온 식객들로 골목길이 북새통을 이뤘다. 창고로 쓰던 뒷방을 식당으로 개조하고 주말에는 두 사람으로 감당이 안 돼 아주머니의 도움도 받는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이 생겼다. 아내 김 씨가 따오는 전복만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물속에 들어가 있을 순 없는 법. 하는 수 없이 주변에서 자연산 전복을 일부 구입해 늘어나는 손님을 맞고 있다.

이 집이 유명해지면서 남해군 미조항 주변의 자연산 전복 값도 덩달아 올랐다. 한 그릇에 1만 원으로는 도저히 타산이 안 맞는다. 손님이 늘면서 ‘속으로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참다못해 채널A에 전화를 했어요. 손해 보고 장사할 순 없잖습니까. 양식을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어요. 아니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박 씨는 ‘양식을 사용할 경우 착한식당 선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다’는 채널A 측의 설명에 전화기를 내려놓아야 했다.

이날도 취재를 하는 동안 경기 안양시 평촌에서 6시간 동안 운전해 온 김지연 씨(60) 부부 일행 4명이 죽을 못 먹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일행은 5분 만에 되돌아 온 뒤 주인에게 “하루 묵은 뒤 꼭 죽을 먹고가야겠다”며 인근 숙박업소를 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기자의 입안에서는 전복의 잔향이 가시질 않았다.

남해=이기진 기자(한식·양식·중식 조리기능사) doyoce@donga.com
#착한식당#고명#삼다도해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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