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인 감사하는 마음이 선물” 외규장각 의궤 반환 뒷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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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유복렬 지음/232쪽·1만3000원·눌와

2011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당시 ‘145년 만의 귀환’이란 헤드라인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반환이냐 대여냐를 놓고 지금도 말이 많지만, 1991년 한국 정부가 프랑스에 반환을 공식 요청한 지 20년 만에 어렵사리 거둔 성과였다. 외교통상부 프랑스 담당관과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정무참사관을 지낸 저자는 거의 모든 양국 간 의궤 협상에 참여하며 겪은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엮었다.

외부에서야 돌아온 보물의 가치에 더 주목했겠지만, 저자에게 의궤는 ‘긴장과 불안의 외줄타기 외교’와 동의어였다. 1999년 4월 처음 열렸던 민간전문가 협상 이래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양국 협상단은 처음부터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공세적 태도를 취했다. 2000년 7월 협상 때는 자크 살루아 프랑스 감사원 최고위원이 주먹으로 탁자를 쾅 내리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이후에도 프랑스는 의궤 대신 그에 상응하는 문화재를 제공하길 요구했고, 한국은 한국대로 여론에 휘청거리며 협상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과도한 업무로 유산까지 겪었다. 오죽했으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의궤 문제라면 지긋지긋해 신물이 난다”고까지 말했을까.

‘터널 속에 갇혀버렸던’ 협상은 2009년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가 부임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박 대사는 여전히 자국 입장만 견지하는 프랑스 관계자들에게 “한국 국민은 맞교환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궤를 돌려주고 한국인의 영원한 사의를 선물로 받으라”고 폭탄 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프랑스의 높은 벽을 무너뜨리는 돌파구로 작용했다. 이후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대여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저자는 한번도 외국에 문화재를 돌려준 적 없던 프랑스 문화재법을 뛰어넘었다는 데 큰 의의를 뒀다.

현재 미국 애틀랜타 부총영사로 재직 중인 저자는 여전히 외교무대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제 이 책을 통해 의궤를 둘러싼 너무나 길고 혼신을 다했던 줄다리기의 줄을 그만 놓고 싶다는 심정을 조심스레 피력한다. 맡은 바에 최선을 다했기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본 샹스(Bonne chance·행운을 빕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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