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준]세제개편, 철학과 각오가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세금을 덜 낸다. 국민부담률, 즉 국민이 내는 세금과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금액이 국민총생산 대비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에 비해 9%포인트나 덜 낸다. 멕시코 칠레 터키 다음으로 적게 내는 것이며, 50% 가까이 되는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무조건 많이 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적게 내고도 건강하고 안정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그러나 분출하고 있는 복지 욕구에 양극화와 고령화, 고용 없는 성장과 사회변화에 따른 평생교육 수요 등, 국가의 재정적 역할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지금 내는 세금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된다.

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누가 덜 내고 있는 걸까? 주로 부자들이 덜 내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중산층과 그 이하 계층도 부자들 못지않게 덜 내고 있다. 일례로 자녀가 둘인 중위소득 근로자가 내는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은 회사가 지불하는 인건비의 18%로 OECD 평균인 26%에 비해 8%포인트나 적다. 자녀가 없는 경우 차이는 더 커진다. OECD 평균이 35%인데 비해 우리는 20%로 무려 15%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러한 사실, 즉 너나 할 것 없이 세금을 덜 내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조세개편안은 이해할 만했다. 세금을 더 거두겠다는 것도 옳았고, 중산층의 부담을 늘리겠다는 것도 옳았다. 부자 감세 축소나 조세정의 확립 과제 등이 강조되지 않은 것이 유감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또 이런저런 세부적인 문제는 논의과정에서 보완되고 수정될 수 있다.

그런데 개편안이 나온 지 불과 며칠 만에 날아가 버렸다. 한마디로 놀랍다. 정부가 내놓은 주요 세제개편안이 이렇게 나오자마자 날아간 적이 있었던가.

세금을 올리는 문제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극단적 경우이긴 하지만 1991년 연방소비세를 인상했던 캐나다의 보수당은 2년 뒤 총선에서 대패했다. 169석이었던 의석은 단 2석으로 쪼그라들어 결국 다른 당에 합병되는 신세가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호주의 노동당은 자원세 도입 문제로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일본 민주당은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다 자민당에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당연히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하고 늘어나는 조세부담이 국가와 개인의 미래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도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또 조세저항이나 이해관계에 대한 철저한 분석도 있어야 하며, 때에 따라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 전체의 결의와 자기희생 의지, 즉 정권을 잃어도 좋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중산층 부담을 늘리는 문제는 더욱 그렇다. 입법권을 쥔 정치권부터 표가 많은 계층은 건드리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다. 상대를 때릴 수 있으면 뭐든 정쟁의 제물로 삼는 ‘나쁜 버릇’도 있다. 더욱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모습은 어땠나? 철학도 비전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늘어나는 조세부담의 의미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국민들 귀에는 그저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세금을 올린다는 소리와 한 달에 1만 원 정도 더 부담하는데 뭘 그리 야단이냐는 핀잔인지 설명인지 모를 소리만 들렸다.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당당함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세제를 바꾸면서 애써 증세가 아니라 우기고, ‘거위털 뽑듯’ 국민이 느끼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라는 말까지 했다. 조세저항이나 정치권의 ‘나쁜 버릇’을 넘겠다는 정부 전체의 결연한 의지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세금인상, 그것도 중산층의 부담을 늘리는 개편을 추진하는 정부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던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동병상련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

왜 이렇게 철학도 비전도 깔리지 않은 개편안이 정권 차원의 결연한 의지도 확보되지 않은 채 나오게 되었을까? 결국 이를 관장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닐까? 오로지 부족한 세수를 메우는 데만 급급한 세제 기술자들이 정책과정을 주도한 탓은 아닐까? 새삼 다시 걱정이 된다. 이런 문제가 이것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점 재검토’ 한다니 그야말로 시간을 가지고 다시 생각해 주기 바란다. 세수 부족만 메우면 된다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 세제의 기본적 모순을 잘 살펴 주었으면 한다. 몰래 ‘거위털 뽑듯’ 할 것이 아니라 정권의 명운을 걸고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철학도 정무감각도, 또 정권 차원의 결연한 의지도 없이 오로지 여론과 표심을 따르는 개편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현재의 모순적인 구도를 더 심화시키기만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bjkim36@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