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전범국 마지막 양심마저 버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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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 한마디 없이 8·15 도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패전 68주년인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가해와 반성을 일절 언급하지 않아 관련국들과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아베 총리가 작심하고 문제의 추도사를 한 만큼 그의 ‘우경화 질주’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1993년 8월 4일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발표한 이후 역대 모든 총리가 추도사에서 아시아에 대한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한국과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고 해마다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베 총리 자신도 1차 내각 때인 2007년 추도식사에서는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며 “깊은 반성과 함께 희생된 분들께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180도 달라진 이날 아베 총리의 추도사에 대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는 “외국에 대한 반성을 담았어야 했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영령에 부응하기 위해 전쟁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평화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의 이날 추도사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 수정의 전주곡이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을 짓누르고 있는 패전국의 오명을 걷어내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집단 망각과 기억의 재프로그래밍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일명 ‘전후체제 탈피’ 프로젝트다.

아베 총리는 일관되게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2006년 처음 정권을 잡자마자 교육이 군국주의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47년 제정된 교육기본법을 애국심을 고취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다. 이후 기존 교과서를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비판하며 교과서 검증제도를 활용해 이를 바꾸는 등 왜곡된 역사 기술을 확산해왔다.

지난해 새로 정권을 잡은 이후로는 더욱 노골적이 됐다. 3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태평양전쟁 책임자들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에 대해 “연합국 측이 승자의 판단에 따라 단죄했다”고 말했다. 이어 4월 국회 답변 과정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에 대해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달 아베 총리가 아시아 순방에서 한일 정상회담 의지를 강력히 희망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관계개선 가능성을 차분히 검토해 왔다. 다음 달 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의 약식 만남을 물밑 조율하는 정황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마침 두 정상의 좌석도 국가명 알파벳 순에 따라 나란히 배치될 전망이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이번 추도사로 당분간 한일관계는 다시 냉각기에 접어드는 것이 불가피하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실장은 “15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적극적인 사과와 화해 제스처를 보였다면 경색된 한일관계를 푸는 계기가 됐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조숭호 기자 bae2150@donga.com
#아베 신조#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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