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오지랖과 메이와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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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한 달 전 내 아내는 자동차 사고 위기를 모면했다. 오른쪽 앞바퀴 바람이 절반 이상 빠진 상태로 달리다가 신호 정지 중이었다. 이때 길 가던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차 유리창을 두드리며 “타이어 바람 빠졌어요”라고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고 깜짝 놀랐단다. 바퀴 휠이 도로에 거의 닿을 정도였다고.

나도 얼마 전 아파트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저기요, 전조등 켜져 있네요”라고 친절을 베풀었다가 겸연쩍었던 적이 있다. 차주인 아줌마는 “자동으로 꺼져요”라며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에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오지랖의 원래 뜻은 겉옷의 앞자락이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살짝 비꼴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나 몰라라’ 하는, 오지랖이 너무 좁은 세태가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 오지랖이라는 말에서는 왠지 모르게 정(情)과 배려가 느껴진다.

반면 일본인들은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기 전에는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을 금기시한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타인이 자신의 영역에 허가 없이 침범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한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 취재를 위해 일본에 갔다가 살벌한 광경을 목격했다. 상점에서 쇼핑 중이던 한 일본 아줌마가 어린 딸의 뺨을 후려쳤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칭얼대는 딸에 대한 따끔한 현장교육이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일본의 이른바 ‘메이와쿠(迷惑·민폐) 문화(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생생한 사례였다.

한국과 일본은 골프장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한국 골프장은 도시의 빌딩 숲을 탈출해 자연의 품에 안긴 골퍼들로 활기가 넘친다. 클럽하우스 식당과 그늘집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쾌활한 정담으로 왁자지껄하다. 반면 일본 골프장은 ‘조용함’ 그 자체다. 마치 ‘정숙(靜肅)’이라는 경고판이 온 사방에 붙어있기라도 한 듯하다.

골프장 캐디도 다르다. 한국 캐디는 한마디로 오지랖이 넓다. “OB 났는데 멀리건 한번 주시죠.” 낙망한 골퍼의 수호천사로 나서며 나머지 동반자들을 단숨에 인심 후한 골퍼로 탈바꿈시킨다. 이는 일본 캐디에게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정다운 모습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렸을 때 강조하는 덕목은 나라마다 독특하다. 미국은 ‘정직해라’, 중국은 ‘부자가 되어라’, 일본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 한국은 종합 완결판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일본인들의 사회윤리 교육의 핵심인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의 주요 단어 ‘남’ 속에 다른 나라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가.

국제 스포츠 경기 때 일본 응원단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계속 사용해 태평양전쟁 피해국을 자극하고 있다. ‘독일 나치처럼 비밀리에 개헌하자’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나치 망언’ 등 일본 각료와 정치인들은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오만한 언행을 수십 년간 쏟아내고 있다. 아소 부총리는 해외 비난이 잇따르자 사흘 만에 ‘나치 망언’을 철회했다.

상점에서 소란을 피운 어린 꼬마는 엄마로부터 벌로 뺨 한 대를 맞았다.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킨 아소 부총리에게는 어떤 벌이 합당할까. 일본 야당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아소는 거부했다. 자신의 발언을 취소했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 것이고 그 발언이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면 엄청난 ‘메이와쿠’다. 이를 종합적으로 감안컨대 이후 ‘메이와쿠 문화’를 소개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이 꼭 필요해 보인다. “메이와쿠오 가케루나(迷惑を 掛けるな)=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단, ‘남’에 외국인은 해당되지 않음.”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안영식#오지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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