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시인’ 허만하 6번째 시집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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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시인’으로 유명한 허만하 시인(81)의 여섯 번째 시집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가 출간됐다. 2009년 펴낸 ‘바다의 성분’ 이후 4년 만의 시집이다. 1997년 고신대 의대(병리학)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이후 3, 4년 만에 한 권꼴로 시집을 펴내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어에는 여든을 넘긴 노시인의 것으로 생각하기 힘들 만큼 긴장감이 팽팽하다. 표제작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는 이번 시집에서 전통적 서정성이나 여유로움을 기대하는 독자들에 대한 정중한 선전포고다. ‘나는 근접하면 동상을 입는 세계의 극한을 찾는 여린 언어다…나의 언어는 우주를 횡단하며 휘어질 줄 모르는 별빛의 직선이다.’

세포나 병균을 고배율 현미경으로 확대하면 새로운 소(小)우주가 눈앞에 펼쳐지듯 시인은 물리적 경치를 내면으로 잡아당겨 독자들에게 낯선 풍경을 펼쳐 놓는다. “시를 쓰는 일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을 다시 보는 일”이라는 시인의 시론(詩論)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든 차이를 껴안고 흐르는 강물에서도 시인의 눈이 치열한 정신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미세한 높낮이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섬세한 정신이 지상에 있다. 지상에서 상처 입지 않은 참된 정신은 없다. 경사면에서 활력을 얻는 물의 체질. 강이 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움직임 자체가 자신의 끝이기 때문이다.’(‘시간의 상흔’)

시인의 시어가 이토록 차갑고 날선 것은 순수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낙화암’ ‘돌고래가 뛰어오르는 것은’ ‘벼랑에 대하여’처럼 추락과 반등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시가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추락을 통한 정신의 거듭남’이라는 모티브를 즐기는 시인의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마, 목월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문단의 거장이면서도 펜을 쥐면 여전히 “흰 종이의 절벽이 무섭다”(‘흰 종이의 전율’)는 시인. 그의 말이 엄살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세상과 만나는 시인의 정신이 여전히 젊기 때문 아닐까.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의사시인#허만하#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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