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묻혀있던 원작, 한국서 생생히 되살려… 이건 기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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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관객 700만 돌파
佛원작만화 르그랑 스토리작가-로셰트 작가-윤태호 웹툰작가-유진룡 문체부 장관 4인 대담

14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를 마치고 장마르크 로셰트 작가, 뱅자맹 르그랑 작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태호 작가가 만화 ‘설국열차’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르그랑 작가는 “한국에 와서 장관님이나 인기 작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4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간담회를 마치고 장마르크 로셰트 작가, 뱅자맹 르그랑 작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윤태호 작가가 만화 ‘설국열차’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르그랑 작가는 “한국에 와서 장관님이나 인기 작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영화 ‘설국열차’의 인기를 타고 양갱까지 덩달아 잘 팔리고 있다. 양갱의 생김새가 영화 속 열차 꼬리칸의 하층민이 먹는 ‘단백질 블록’과 닮았기 때문. 이 작품의 만화 원작자들에게 양갱을 아는지 물었더니 스토리를 쓴 뱅자맹 르그랑(63)이 재킷 주머니에서 양갱을 꺼내 보여줬다. 르그랑은 “다른 프랑스 작가가 양갱을 주면서 ‘설국열차를 볼 때 꼭 꺼내 먹어보라’고 했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를 보면서 먹기 위해 가지고 다닌다”고 말했다.

원작자의 손에 양갱을 쥐여줄 정도로 영화가 인기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후 보름 만에 관객 700만 명을 넘어섰고,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재출간된 원작 만화도 열흘 만에 1만5000부가 팔렸다. 영화에 담지 못한 꼬리칸 이야기를 담은 윤태호 작가(44)의 웹툰 ‘설국열차: 프리퀄’은 영화 개봉일에 연재를 시작해 1, 2회분을 합쳐 조회수가 800만을 넘었다.

14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원작 만화 ‘르 트랑스페르스네주’의 스토리 작가 르그랑과 그림을 그린 장마르크 로셰트(57), 윤 작가, 그리고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함께 만나 한국 만화의 발전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 만화 이야기의 힘

―영화 ‘설국열차’의 흥행을 어떻게 보나.

▽로셰트=이렇게까지 성공할지 몰랐다. 30년간 묻혀 있던 작품이 프랑스도 아닌 한국에서 성과가 나와 정말 놀랍다. 그냥 뿌려놓은 씨앗이 크게 자란 느낌이다.

―1970년 시작한 만화는 스토리 작가와 그림 작가가 바뀌기도 했는데, 어떻게 작품을 이어 나갔나.

▽로셰트=이야기를 잇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살릴까 고민하다가 SF 작품을 많이 해온 르그랑에게 연락했다.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메타포적 동화를 쓰려고 했다.

▽르그랑=첫 권에서 등장인물이 대부분 죽었다. 고민 끝에 제2열차를 구상하고 새로운 인간 군상을 그렸다. 설국열차끼리 부딪칠 수 있다는 갈등 요소를 만들어내니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영화 작업에도 참여했나.

▽로셰트=봉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화가 캐릭터를 그림을 그리는 기자 정도로 생각했다. 내가 화가로 하자고 제안하니 그가 수락했고, 내가 영화 속 그림을 직접 그렸다.(극중 꼬리칸 사람들의 반란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화가’의 손은 로셰트의 것이다)

―유 장관과 윤 작가는 만화, 영화를 어떻게 봤나.

▽유=만화와 영화, 웹툰 모두 우울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만화가 이야기의 원천 소스로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윤=만화와 영화 모두 독특한 매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적 정서를 담은 영화가 조금 더 알기 쉬웠다.

―영화는 만화에서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내용이 상당히 다른데, 원작자 입장에선 서운하지 않나.

▽로셰트=영화는 서사적이고 만화는 시적인 부분이 있어 100% 영화로 옮기기 어려워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봉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들어서 전혀 아깝지 않다.

▽윤=만화가는 자기 세계를 만화로 이미 증명했다. 만화와 다르게 영화에서 각색되는 건 감독의 몫이고 전혀 아쉽지 않다.

―지구 종말을 앞두고 설국열차에 오르겠나.

▽르그랑=내가 조금 젊었다면 설국열차에 올라서 많은 사람과 여러 일을 도모하지 않을까.

▽로셰트=얼마 전 알프스에 다녀왔다. 눈을 좋아하는데 지옥 같은 열차에 타느니 눈 위에 서서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는 편이 낫겠다.

○ 한국 만화가 해외에 진출하려면

―한국 만화를 접한 적이 있나. 특히 웹툰을 본 적이 있나.

▽르그랑=프랑스 서점에 처음엔 일본 ‘망가’가 많았는데 요즘엔 망가가 주춤하고 한국 만화가 많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에서 ‘설국열차’를 출판한 카스테르만에서도 한국 만화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작품을 출판하고 있다. 한국 만화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로셰트=독일 베를린에 사는데 젊은 작가가 웹툰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줘 최근에 알았다. 윤 작가가 그린 ‘설국열차’ 웹툰을 봤는데 그림이 생동감 있었다. 특히 조회수가 몇 백만이던데 책도 그만큼 팔리면 좋겠다.

▽윤=영화가 원하는 웹툰을 그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봉 감독과 미팅을 여러 번 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해설의 틀’을 준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한국 만화의 해외 진출을 위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유=2003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때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해 유럽에 한국 만화를 알렸다. 이후 조금 주춤했지만 웹툰으로 다시 부흥하는 분위기다. 해외에 만화를 알리려면 번역이 중요한데 지금까지는 엉망인 번역도 많았다. 만화의 간결한 구어체를 잘 살릴 만화 전문 번역가를 육성하는 데 힘쓰겠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설국열차#한국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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