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생 선발권 없는 자율고는 자율고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교육부가 2015학년도부터 중학교 성적과 관계없이 누구나 자율고에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의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서울의 경우 내신 상위 50% 학생만 자율고에 지원할 수 있다. 성적 규정을 없애면 수업료만 일반고보다 3배 비싼 자율고에 갈 이유가 없어지게 돼 서남수 교육부 장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율고 죽이기’나 마찬가지다.

자율고가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자율고는 이명박 정부가 고교 다양화와 학교 선택권 강화 차원에서 도입했으나 일부 학교가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해 스스로 자율고 지정을 반납하기도 했다. 비싼 수업료에 비해 일반고의 교육 과정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자율고 수를 줄이거나 관리 감독을 강화해서 개선해야지, 자율고의 존립 근거를 흔들 일은 아니다.

자율고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아 더 우수한 인재로 키워내겠다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에서 출발했다. 성적 제한을 없애면 목적 달성이 어렵다. 학생 선발권이 없고 수업료만 비싸다면 학생들이 굳이 지원할 이유가 없는 만큼 자율고가 고사(枯死)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자율고에만 학생이 몰려 교육 격차가 더 심화할 가능성도 있다.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옛 자립형 사립고만 반사 이익을 누릴 것이 뻔하다. 현재 116개 자율형 공립고를 5년의 지정 기간이 끝나면 모두 일반고로 전환시키겠다는 것도 정부의 자율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여준다.

특목고 자율고 등에 밀려 껍데기만 남다시피 한 일반고를 되살리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일반고 지원 계획에도 허점은 많다. 필수 이수 단위를 줄여 자율 과정을 늘린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만 국·영·수 등 입시 수업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특목고 등의 입시 위주 수업이 전체 일반고로 확대되는 결과를 빚지 않을지 우려된다. 학교마다 5000만 원씩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반갑지만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교육정책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백년대계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을 갈아엎는 방식의 교육 정책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정부를 믿고 열심히 학교를 운영한 자율고는 물론이고, 자율고 진학을 염두에 두고 공부한 학생들을 피해자로 만들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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