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금으로 감당할 복지 수준은 어디까지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정부의 세법 개정안 발표로 촉발된 증세 파동이 본질적인 문제를 그냥 놔두고 엉성한 땜질로 마무리될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사과하고 세 부담이 늘어나는 기준 소득을 높이는 것으로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을 따져보면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라는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하고 취임 후에도 밀어붙인 데 있다. 그러나 정작 책임이 큰 정치권은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놓고 정부 경제팀을 몰아붙이기에 바쁘다.

한국은 재정 대비 복지지출 비율이 9.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를 제외하면 꼴찌다. 복지 재정은 반드시 확충해야 하지만 복지는 곧 세금이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면서 증세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쳐서는 안 된다. 본란은 정치권이 선거 때 표를 노리고 공약을 남발해온 것에 대해 무책임한 포퓰리즘적 행태라고 비판해 왔다.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꼭 필요한 증세안을 황급히 거둬들이는 것도 못지않은 신(新)포퓰리즘이다. 이런 식으로 공론(公論)이 왜곡되고 정책이 비뚤어져서는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

박 대통령은 작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복지 수단과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 대타협을 추진하겠다. 앞으로 5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국민 행복의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진행되면서 조세 부담 수준에 대한 언급은 점점 수그러들었고 결국 ‘증세 없는 복지’라는 구호로 후퇴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이번에 정부는 비과세 감면을 줄이면서 “세목 신설과 세율 인상을 안 했으니 증세는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공약은 지키되 증세는 없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어떻게든 퇴색시키지 않으려고 궁색한 논리를 개발한 것이 죄라면 죄다. 박 대통령과 정치권이 경제부총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 든다면 옳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대선 공약의 구조조정을 본격 논의해야 한다. ‘복지=세금’임을 정직하게 인정한 뒤 복지 수준과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야당도 정치적인 반사 이익에 몰두하기보다는 국회로 돌아가 세금과 복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 참여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권이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는 유권자의 책임도 크다. 세금 없는 공짜 복지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음을 국민이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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