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야? 요새야? 아파트가 둘러싸도 굴복않는 단독주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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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큐브의 2층 마당에서 동쪽 벽을 등지고 바라본 거실. 집 전체를 흰색 화강석으로 싸놓아 주변의 시선을 차단했지만 곳곳에 개구부를 뚫어 놓은 데다 2, 3층 거실에 통유리창을 설치해 실내에 있어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흰색 큐브 디자인은 이웃과의 단절감을 두드러지게 한다(아래 사진).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방배큐브의 2층 마당에서 동쪽 벽을 등지고 바라본 거실. 집 전체를 흰색 화강석으로 싸놓아 주변의 시선을 차단했지만 곳곳에 개구부를 뚫어 놓은 데다 2, 3층 거실에 통유리창을 설치해 실내에 있어도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밖에서 보면 흰색 큐브 디자인은 이웃과의 단절감을 두드러지게 한다(아래 사진). 윤준환 사진작가 제공
서울 서초구 방배동 주택가에 25년 넘게 살아온 H 씨. 어느 해인가부터 동네 집들이 하나둘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바뀌더니 2006년엔 집 앞 관악산 조망을 가리는 15층짜리 아파트 5개동이 올라왔다. 이후 옆집엔 4층 빌라가 들어섰다. 이사를 가려고도 했지만 정든 집터를 떠나기는 싫었다. 그는 건축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주변의 시선과 소란에 방해받지 않고 단독주택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H 씨의 고민은 아파트와 상업시설의 위협을 받는 주택가에 사는 이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였다. 조남호 솔토건축 대표(51)가 제시한 해결책은 집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집 주위로 2층 높이의 흰색 화강석 벽을 두르는 것이었다.

최근 찾아간 ‘방배큐브’는 말 그대로 네모난 요새처럼 보였다. 밖에서보다는 안에서 봤을 때 더 근사한 집이다. 연면적 590.81m²의 3층 규모로 동남향인데 주변에 고층 아파트와 빌라가 있음에도 혼자만 푹 꺼져 있는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결은 주변 용지와의 레벨 차이와 건물 1층을 벽 없이 기둥만으로 구성한 필로티 방식에 있다. 원래 터가 경사진 곳에 있어 옆쪽 아파트와 8m의 높이 차가 있는 데다 1층 기둥으로 2, 3층을 들어올린 덕분에 고층 건물에 가리지 않아 볕이 잘 든다. 1층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은편 아파트 쪽으로 대지선까지 나무 덱을 덧대어 공간이 시원하게 확장돼 보인다.

2층 높이의 흰색 벽은 주위 시선과 소음을 차단하고, 군데군데 크고 작은 네모로 뚫어 놓은 개구부로는 집안의 중정과 이웃집의 정원이 이어져 그림처럼 시야로 들어온다. 특히 동쪽에 2개 층을 연결해 크게 뚫어 놓은 개구부가 큐브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소해 준다. 조 대표는 “여름 더위가 혹독해져 남쪽 창이 부담이 된다. 그래서 동쪽으로 큰 창을 냈다”고 했다.

집주인 H 씨는 “처음엔 벽을 쌓는다고 해서 참호 같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곳곳에 뚫어 놓은 공간으로 남의 정원을 내 것처럼 감상하고, 동쪽 창으로는 일출을 볼 수 있어 좋다. 화강석 벽도 햇볕이 내리쬘 때와 비 올 때 모두 표정이 달라 벽 자체가 조각품 같다”고 만족해했다.

실내 공간 구성도 여느 집과는 다르다. 대개는 거실이 중심이 되지만 방배큐브 2층엔 식당을 중심으로 방과 부엌, 거실이 배치돼 있다. 안주인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식탁인 점을 감안한 설계다.

점차 위태로워지는 주택가에서 큐브형 집이 보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안에 있을 땐 아늑하고 좋았지만 대문 밖을 나서니 이웃과 교류할 여지를 주지 않는 방배큐브의 흰 벽은 소통의 벽으로 느껴졌다.

그나마 도심에 남은 주택가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집주인인 H 씨 생각도 그랬다. 그는 “10년, 20년 후 여기가 어찌 될지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이 집을 카페나 갤러리로 바꿔 쓸 수 있도록 설계에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다.

조남호 솔토건축 대표
조남호 솔토건축 대표
조 대표는 나중에 용도에 따라 집을 쉽게 개조할 수 있도록 구조체와 사이 벽을 분리했다. 집을 크게 구획하는 주요 벽은 철근콘크리트로 쌓았지만, 사이의 세부 벽들은 목재를 활용한 건식 벽이어서 쉽게 해체할 수 있다. 1층도 기둥과 창고를 빼면 대부분 주차장과 덱으로 비워 놓았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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