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은 왜 윤리강령 없나” 美 대법 개혁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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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모금행사 참여 등 잇단 물의… 상하원의원 4명 ‘대법 윤리법안’ 제출
재판과정 공개 요구 목소리도 커져

‘가장 신성한 법적 결정을 내리는 동시에 가장 폐쇄적인 조직’이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고 있는 연방 대법원(Supreme Court)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높아지고 있다. 동성결혼, 소수인종 우대, 투표권 등에 대한 중대 판결을 잇달아 내린 후 9월 초까지 휴회에 들어간 대법원에 대해 윤리강령을 채택하고 재판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유에스에이투데이는 12일 밝혔다.

이달 초 리처드 블루멘설, 크리스 머피 등 상하원 의원 4명은 ‘대법원 윤리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현재 모든 주 법원과 연방 지법 및 항소 법원의 법관은 ‘미국 법관 행동강령(CCUSJ)’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반면 연방 대법관 9명만이 유일하게 그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연방 대법관도 다른 법관과 마찬가지로 윤리적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윤리강령은 법관의 외부 정치세력으로부터 독립, 개인적 이해관계가 있는 재판 참여 기피 등을 다룬 5개 조항과 다수의 세부 규정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판결 참여 금지 등으로 제재하고 있다.

의회가 윤리강령 논의에 나선 것은 최근 대법관들의 비윤리적 행동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파인 앤터닌 스캘리아,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기업의 정치모금 규제를 완화하는 판결을 내린 후 억만장자 기업인의 모금 행사에 참여해 논란이 됐다. 또 다른 보수파인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보수단체 모금 행사에 참여해 연설을 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부인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보개혁(오바마케어)을 반대하는 보수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데도 지난해 대법원의 오바마케어 판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졌다. 진보 성향의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도 과거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으로 오바마케어 변론을 펼쳤던 전력이 있는데도 오바마케어 판결에 참여했다. 윤리규정은 법관이 자신과 이해관계가 관련된 재판의 경우 자발적으로 참여를 기피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관들은 한목소리로 “윤리강령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법관들은 윤리강령에 적용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윤리강령을 참조하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윤리강령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대법관들이 법의 시행을 막는 법적 조치를 강구해 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대법원 재판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대부분의 주 법원과 연방 법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 측이 동의할 경우 법정에 카메라를 설치해 재판 과정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 대법원에서는 카메라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현재 대법원의 방청 인원은 400명으로 제한돼 있어 방청객이 아닐 경우 재판 과정과 판결을 신속하게 알기 힘들다. 의회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하는 C-SPAN 방송은 대법원 재판도 생중계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법관들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카메라가 허용될 경우 구두 변론만 중요하게 비칠 수 있다”(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카메라는 법관들로 하여금 튀는 행동을 하게 할 수도 있다”(앤서니 케네디) 등 대법관들은 다양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 밖에 재판과 판결 내용을 담은 필기록과 오디오 자료도 며칠이 지난 후에야 일반에 공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당일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법원개혁단체인 주디셜워치의 톰 피턴 대표는 “현재 대법원의 대국민 신뢰도는 43%로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라며 “대법원이 개혁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속도는 매우 느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대법원#윤리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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