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양건 말, 김정은 사진만으로는 부족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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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남(對南) 총책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방북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에게 “개성공단 문을 닫을 생각이 없었는데 군부 때문에 가동이 중단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4월 개성공단에 나타나 북측 인력 전원 철수와 가동 중단을 선언했던 장본인이 뒤늦게 군부 핑계를 대는 의도가 궁금하다. 일각에선 14일 열리는 남북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관련해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올 징조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군부 강경파를 지목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세 차례에 걸친 개성공단 통행 차단 때나, 경의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이 지지부진할 때도 북한은 전가의 보도처럼 군부를 팔았다. 북한이 아무리 선군(先軍)사회라 해도 절대 권력자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재가 없이 개성공단을 문 닫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달러 박스’인 개성공단을 어떻게든 살리고, 남한 내 여론을 달래기 위해 지어낸 말로 들린다.

박 사장은 미국 시민권자로 215차례나 방북했고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북한은 그를 메신저로 활용해 남북관계 복원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비무장지대 평화공원을 언급하며 “개성공단이 잘돼야 평화공원 조성도 잘될 수 있다”고 말했다. 14일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하자는 은근한 압박이다. 김정은은 박 사장과 함께 사진을 찍어 그에게 무게를 실어줬다.

북한은 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에서 “개성공단의 재가동이야말로 애국적인 용단이고 정의로운 선택”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번지르르한 말의 성찬만으로는 진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북한이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책임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문서로 합의해 주는 일이 중요하다.

정부도 북한이 재발 방지를 보장한다는 큰 원칙에 동의한다면 세부 협의에서는 유연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채널A에 출연해 “북한이 14일 만나자고 한 것 자체가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에 회담을 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위해서도 시장경제의 실험장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박 사장을 통해 전한 발언이 진실이라면 김 부장이 직접적으로 개성공단 재개의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14일 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남북 간 최종 합의가 이뤄지고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김 부장이 함께 서명을 한다면 더욱 신뢰성 있는 문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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