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영훈]‘국사 수능필수’는 해법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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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수로 지정하려는 교육계의 여론이 커지고 있다. 12일 한국사교육 강화를 위한 당정협의에서도 수능 필수화 방안이 논의됐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수능필수화 방안은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인 줄 모르는 학생이 70%나 된다는 어느 조사에 대한 대통령의 개탄이 그 발단이었다. 대통령이 역사과목을 수능의 필수로 넣으면 딱 끝날 일이라고 하였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나 제시한 해법에 대해서는 찬성하기 힘들다.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이 잘못된 것은 초중고교 12년간의 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첫째, 중고교 역사과정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교육은 아주 작은 비중을 점하고 있다. 예컨대 2011년에 개정된 역사 교육과정 개정안에 의하면 중학교 역사교육의 성취기준을 점수화한 총 69점에서 광복 이후대한민국 역사에 할당된 것은 4점에 불과하다. 고교 역사교육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총 34점 가운데 6점이 대한민국 역사에 부여될 뿐이다. 그에 비해 고교 역사교육에서 개항기를 포함한 조선시대는 13점이고, 삼국, 통일신라, 고려시대는 10점이다. 이 같은 교육과정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 봤자, 학생들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고대사와 중세사의 따분한 지식을 강제로 주입받을 뿐이다.

둘째, 두 차례의 수정을 거친 현행 제7차 교육과정 전반의 문제로서 이른바 ‘국민교육’이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사 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이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 이상의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과에 포함된 역사, 사회, 윤리 등 15개 과 교과서 어디에도 대한민국은 1948년에 세워진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이며,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유인이며, 자유인은 어떠한 권리를 향유하며, 그 대가로 어떠한 의무를 져야 하는지에 대한 서술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수준의 국민교육은 초등 6년간에 기초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초등 과정의 교과서가 가르치는 역사는 ‘우리나라’의 애국가, 태극기, 문화재에 대한 것뿐이다. 그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국가임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초등교육에서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의 동어 반복이다. 그래서 초등교육은 5학년부터 통일교육을 중시하고 있다. 남과 북은 원래 한가족이다. 어떻게 하면 통일을 이룰지 각자 생각해 보자 하면서 숙제를 내고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답을 초등학생에게 묻고 있음이 현행 교육과정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국민교육’이 배제된 것은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이며 그 빈 자리를 민족교육과 무국적의 시민교육이 차지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6·25전쟁이 북의 남침임을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역사의식에 개탄을 금치 못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 어릴 적에 그런 교육을 충실히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1992년 이후 초중등 과정에 입학한 세대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슬픈 전쟁이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반공독재가 강화되었다고 배웠을 뿐이다.

현행 역사 교과서 어느 하나도 6·25전쟁이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무력 침입을 맞아 대한민국이 우방 미국의 도움을 받아 그의 인권과 자유를 방위한 전쟁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이런 교육을 받은 이른바 3040세대가 장차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때 어떠한 혼란이 벌어질지 두려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대통령이 한국사를 수능의 필수로 집어넣으면 문제가 딱 해결될 것이라고 본 것은 참으로 안이한 발상이었다. 문제의 근원이 얼마나 심층적이고 구조적인지에 대한 자문도 없었던 것 같다. 정책의 방향과 추진 주체에 대한 정무적 판단을 결여한 즉흥적 발언이었다. 그 결과가 교육과정과 입시제도의 혼란일 뿐임은 불을 보듯이 명확한 일이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수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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