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성산]김정은이 좋아하는 세상 만들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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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산 뮤지컬 요덕스토리 감독·탈북자
정성산 뮤지컬 요덕스토리 감독·탈북자
연일 세상이 시끄럽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대선 개입 여지에 대한 국가정보원 국정감사까지 온통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이런 소란함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국정원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이 결과적으로 김정은만 좋아하게 만드는 것을 아는지 정말 궁금하다.

북한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에 ‘남조선 안기부’가 얼마나 잔인한지 제대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북한군 복무 중에 휴전선 부근에서 근무하는 북한 군인들에게 의무적으로 보여주는 ‘면전심리전’이란 영상물이 있다. 이 영상물은 남조선으로 귀순한 탈북자들을 어떻게 유혹하고 어떻게 잔인하게 살해하는지, 한마디로 ‘남조선 안기부’의 악랄함을 주입시키는 영상물이다. 영상물에서 충격을 받은 것은 ‘남조선 안기부’의 유혹에 넘어간 탈북자가 비밀을 전부 실토해낸 후 안기부 여성요원들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이다.

그래서였을까. 필자도 1995년 탈북해 한국으로 올 때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가 ‘남조선 안기부 요원’들이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교육받은 악랄한 ‘남조선 안기부’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한 달도 안 돼 완전히 변했다.

지금도 북한 김정은 정권은 “남조선 국정원 특무대가 중국 국경에서 공화국 인민들을 강제 납치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노동신문은 틈만 나면 공개적으로 국정원을 ‘악의 소굴’이라고 하는 논평을 싣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 지 19년째. 나는 종종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이 없었으면 이 나라는 이미 북한 김일성, 김정일이 바라던, 지금은 김정은이 바라는 ‘남조선 공산화’가 되었을 것 이라고 장담한다.

더욱 놀랐던 것은 북한에서 새로운 계기가 있을 때마다 “국정원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투쟁”을 외치면 며칠도 안 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북한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북한 사람들보다 김정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산다는 사실을 느낀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성향으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해가 되나 김정일을 극도로 찬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불편한 현실 앞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요즘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진 국정원을 할퀴고 헐뜯고 해체하라는 목소리가 크다. 북한 김정은의 입이 귀에 걸렸을 것이다. ‘국정원 해체, 국가보안법 폐지, 반미투쟁’을 통해 남조선을 적화하려 했던 김정일의 통일전선부 전략이 김정은 3대 세습으로 지속되고 있다.

남북한 할 것 없이 다 아는 속담 가운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다. 국정원 흔들기가 진정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인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 것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정성산 뮤지컬 요덕스토리 감독·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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