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 독립지사 이영수옹과 故윤재춘 독립지사 손자 윤호연씨의 ‘남다른 광복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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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던 윤호연 씨(왼쪽)와 광복군 생존자인 이영수 옹. 윤 씨는 9일 경기 수원시 광복회 수원지부에서 이 옹을 만나 “우리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셨을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던 윤호연 씨(왼쪽)와 광복군 생존자인 이영수 옹. 윤 씨는 9일 경기 수원시 광복회 수원지부에서 이 옹을 만나 “우리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셨을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이영수 옹(89)과 윤호연 씨(21). 68세의 나이 차만큼 두 사람은 살아온 세대와 환경이 너무나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매년 8월 15일 광복절만 되면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는 점이다.

이 옹은 1945년 광복군에 입대해 활동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지사다. 윤 씨는 항일결사조직 ‘무등회’에서 학생독립운동을 했던 윤재춘 지사(1922∼1988)의 손자. 두 사람이 9일 경기 수원 장안구에 있는 광복회 수원시지회 사무실에서 만나 서로 얘기를 나누며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 어린 시절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던 ‘조국’의 의미


이 옹의 아버지 이사집 씨는 1919년 경북 고령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 일본군에게 고문을 당해 불구의 몸이 된 독립지사였다. 이 옹은 “어릴 때 아버지가 쌀가마니와 탄약 등을 지고 옮기는 모습을 자주 봤다”며 “어른이 돼서야 그 물자들이 독립투사들에게 전달됐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 옹은 열두 살 때 만주에서 일본군이 마을 한가운데서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형틀에 묶어 물고문하는 장면을 봤다. 스무 살 무렵에는 일본군 무리에 끌려가던 한국인 위안부 여성 40여 명을 목격했다. 이 씨는 “조국 잃은 설움을 매일 숨 쉬듯 느꼈다”고 회상했다.

반대로 어려서부터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윤 씨는 “어렸을 때 솔직히 우리나라가 너무나 싫었다”고 고백했다. 독립지사였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윤 씨에게 한국은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은 나라’였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온통 명문대 입학만을 기대했고 주변 사람들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만 아니면 어디든 좋다’는 생각에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포기했다. 윤 씨는 “한국에 발목을 잡힌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 ‘나를 버리는 삶’을 택하다


조국 잃은 설움에 매일 울분을 토하던 이 옹은 스물두 살(1945년)이 되던 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무작정 중국 안후이(安徽) 성 푸양(阜陽)에 있던 광복군 제3지대 본부를 찾아가 “일본군과 싸우다 일본군 형무소에서 사형당하겠다”며 입대를 요청했다. 제3지대(支隊)는 미국 영국 등 연합군과의 합동작전을 위해 요원들에게 특수 훈련을 시키는 부대였다.

이 옹은 주요 도시에 지하공작대를 파견하거나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맡았다. 활동 도중 일본군에게 붙잡힌 동료들은 비참하게 죽어갔다. 특히 친했던 동료가 일본군의 회유를 거부했다가 결국 목이 베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던 날 이 옹은 목 놓아 울었다. 그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해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중국군에게 들었다”며 “동료들을 얼싸안고 만세를 외쳤다”고 회상했다.

윤 씨는 고등학교 역사수업을 계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그야말로 할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인터넷 블로그와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에도 할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지킨 나라를 떠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할아버지처럼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2011년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현재 학군단(ROTC)에서 복무 중인 윤 씨는 “훈련 중에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온다”고 말했다.

○ 안타까운 ‘2013년 광복절’


이 옹은 “생존 독립지사들이 요즘 나이가 들어 매년 세상을 떠나고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 독립지사가 했던 일을 기억하고 후세에 전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씨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에게 실망할 때가 많다”며 “광복절을 휴일로만 아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윤 씨는 이날 처음 만난 이 옹에게 “우리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으면 저한테 들려주셨을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수원=곽도영·이은택 기자 now@donga.com
#독립지사#이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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