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뽀뽀뽀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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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취학 전 영유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학자들의 견해에 따르자면 필자의 8할을 만든 것은 ‘뽀뽀뽀’다. 매일 아침 뽀뽀뽀를 본 뒤 유치원에 갔다가 친구들과 ‘헤어질 때 또 만나요 뽀뽀뽀∼’를 부르며 집에 오는 게 일과였다. 1980년대는 영유아 콘텐츠랄 게 없던 시절이었기에 아이들은 뽀뽀뽀로 대동단결했다. 뽀미언니가 편식을 하지 말라고 하면 멸치 반찬도 집어 먹고, 늦잠을 자지 말라고 하면 주말에도 꼭두새벽에 눈을 뜨곤 했다.

그러던 뽀뽀뽀는 1990년대 시청률과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93년 MBC는 뽀뽀뽀를 주중 매일 방송에서 주말 1회 방송으로 축소했다가 부모들의 항의로 3주 만에 이를 철회했다. 1998년 영국 BBC방송의 영유아 교육 프로그램 ‘텔레토비’가 국내 전파를 타면서 뽀뽀뽀의 시청률은 반 토막이 났다. 1999년 뽀뽀뽀 제작팀이 자체적으로 유아교육 프로그램의 위기에 관한 세미나를 열 정도로 위기감이 커졌다. 당시 교육 전문가들은 철저히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제작한 외국의 유아교육 방송과 달리 우리 방송들은 성인 프로그램을 패러디하는 등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전하던 뽀뽀뽀는 마침내 지난주 32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를 아쉬워하는 이들은 대부분 뽀뽀뽀와 함께 성장한 어른들이다. 우리 아이가 즐겨 보는 뽀뽀뽀를 없애지 말아 달라는 수요자 측면(?)의 의견은 별로 없었다. 제작진이 밝힌 폐지의 변은 ‘뽀뽀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 세대가 됐다. 교육 환경을 비롯한 삶의 환경이 변하면서 교육 프로그램 역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69년 탄생한 미국의 영유아 교육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는 지금도 미국 PBS에서 전파를 타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등장 인형 간의 동성애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지만 이를 보완하면서 계속 발전시켜 왔다. 텔레토비도 1997년 등장한 이후 중독성 논란 등을 해소하면서 전 세계로 수출하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이들 프로그램의 장수 비결은 유아교육 전문가들과 수년간 사전 연구를 거쳐 만들었다는 점, 기초발달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 단순하고 반복적인 활동으로 오감을 일깨운다는 점, 그리고 공영방송 또는 외부 재단의 재정적 뒷받침을 통해 안정적인 제작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MBC가 ‘내 아이를 1% 영재로 키우는’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글로벌 인재를 위한 영어 교육을 강화하겠다며 뽀뽀뽀 후속으로 내놓은 ‘똑? 똑! 키즈스쿨’이 이런 조건에 얼마나 부합할지 궁금하다. 시청률에 민감한 방송사에 2030세대의 추억을 위해 뽀뽀뽀를 유지하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30년 넘게 온 국민이 사랑해온 브랜드를 하루아침에 폐기해 버리는 근시안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과 영국의 교육 환경을 비롯한 삶의 환경이 우리만큼 변화하지 않았을 리는 없는데 말이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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