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진석]日우경화 광풍 속 ‘희망’을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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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국제부 기자
허진석 국제부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일본 정치인의 망언은 세기 힘들 정도로 계속됐고, 그때마다 한국인의 감정은 격앙됐다. 대한해협이 건널 수 없는 바다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더군다나 일본에는 망언을 하는 극우세력만 있는 것처럼 비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일본의 다른 모습을 알려 균형을 잡고 싶었다. 올해 6월부터 ‘고노 담화 20년-일본의 양심 세력’ 취재를 시작한 이유다.

1993년 8월 4일 일본 정부가 일본군의 위안부 모집에 구조적인 강압이 있었음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제 동원, 일본 교과서 등의 분야에서 꿋꿋하게 진실을 추적해온 일본의 ‘양심 세력’ 덕분이었다.

▶본보 5일자 A1면 [일본의 양심 세력]우경화 폭주속에도…
▶본보 5일자 A3면 등 시리즈 [일본의 양심 세력]<1>위안부 문제 해결 20여년…

이들은 응원보다 비난이 많고, 지지는커녕 테러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일상에 자신들의 인생 대부분인 20∼50년을 바쳤다. 일본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겠다는 일념에서다. 광복 이후 한일 사이에는 위험한 순간이 많았지만 극단적으로 단절되는 사태를 겪지는 않았다. 그건 이들의 피땀 어린 노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시노 루미코(西野瑠美子) 씨는 20여 년간 한중일을 오가며 참전 군인들의 증언을 모으고 위안소 현장을 취재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즈시 미노루(십子實) 씨는 야스쿠니신사에서 일본의 침략사관을 비판하는 현장답사 모임과 강연을 40여 년째 개최하고 있다. 히라노 노부토(平野信人) 씨는 한국인 피폭 징용자를 돕기 위해 약 30년간 300회 넘게 한국을 다녀갔다.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씨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일본 교과서에서 침략 사관을 지우는 일에 바쳤다. 이들은 자신의 여가와 월급을 쪼개 시간과 경비를 스스로 마련하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들 헌신의 제1목표가 한국을 위한다는 것은 아니다. 자국 일본을 위하는 마음이 더 크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의 전시물이 한국의 독립기념관의 그것 못지않게 일본에 비판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나아가 이들은 세계의 평화, 발전을 원한다.

세계의 평화, 안녕을 위해서는 자국 일본이, 일본 정치인들이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해야만 한다는 것이 이들의 신념이다. 일본이 전쟁을 다시 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이들의 우려는 한국인인 기자보다 훨씬 더 컸다.

‘일본의 양심 세력’을 부각시킨 것은 일본의 망언이나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응을 자제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가 진심 어린 사죄를 하고 반성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의 한 축인 일본 정부가 정치적 해법을 제시할 능력을 상실했다면 어찌해야 할까. 오히려 유엔 수장을 배출하고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성장한 한국이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갈 방법을 제시할 수는 없을까. 우경화의 광풍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의연한 일본의 양심 세력을 보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좀 더 웅숭깊고 창조적인 해법을 기대하게 됐다.도쿄·나가사키에서

허진석 국제부 기자 jameshuh@donga.com
#일본#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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