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컬러스 크리스토프]‘극과 극’ 두 여성이 준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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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부자 경영인이자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창녀이자 마약 밀매업자인 또 다른 여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여성이 서로를 비극에서 구해냈다.

10여 년 전 중남미 국가 콜롬비아는 치열한 내전(內戰)과 마약 밀거래에 시달렸다. 이 나라가 고심하던 문제의 하나는 극심한 빈부격차였다. 빈부격차 문제를 다루는 콜롬비아의 엘리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철저히 분리시킨 채 해법을 마련해 왔다.

그러나 엘리트들의 이런 접근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안정을 찾았다. 오래된 스페인 성곽과 아름다운 자갈길로 유명한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에 점점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물론 갱들이 슬럼가에서 활개를 치는 등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콜롬비아의 변화는 아직 불완전한 것도 사실이다.

이 나라에서 성공한 여성 가운데 하나가 카탈리나 에스코바르다. 미국식 교육을 받은 그는 국제 무역회사를 운영했고, 부자였으며 아름다웠다. 17개월 된 사랑스러운 아들 후안 펠리페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어느 날 어린 아들이 집 발코니 난간을 넘어 8층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에스코바르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사고 며칠 전 병원 자원봉사를 갔을 때 만난, 약값 30달러가 없어 결국 아이를 잃어야만 했던 한 10대 엄마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고로 아들을 잃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싸인 그에게 어린 아이들의 죽음이 일상인 콜롬비아 빈민가의 현실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에스코바르는 자신의 슬픔과 빈민가 여성들에 대한 연민을 ‘후안 펠리페 고메스 에스코바르 재단’을 만드는 데 돌렸다. 이 재단은 죽은 에스코바르의 아들을 기리는 동시에 카르타헤나 지역의 10대 엄마들에게 직업 교육, 아이를 돌보는 교육, 건강 상담 등을 펼쳐 빈곤의 악순환을 끊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를레이디스 페냘로사 같은 젊은 여성이 좋은 예다. 그는 빈민가에서 자랐지만 똑똑하고 용기가 있었다. 7세 때부터 친척들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9세 때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 친척들을 고소해 모두 감옥으로 보내기도 했다. 물론 이것으로 가난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몇 년 후 페냘로사는 병든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400달러를 구해야 했다.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 12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성매매에 나섰다. 성매매 업소에서 그는 마리화나와 코카인 등 마약 거래의 운반책으로 이용됐다. 그러던 어느 날 페냘로사는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그와 함께 마약을 운반했던 다른 여성은 경찰의 총탄에 숨졌다. 그는 경찰로부터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고문을 당했고, 그 흉터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경찰에서 풀려난 뒤 페냘로사는 새 삶을 시작했다. 그는 14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후안 펠리페 고메스 에스코바르 재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직업 교육도 받았다. 지금은 꽤 괜찮은 커피숍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페냘로사는 분명 빈곤의 악순환을 끊은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그의 강한 의지와 재단을 설립해 그를 도운 에스코바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스코바르는 “빈민가 소녀들을 돕는 것이 오히려 아들을 잃은 내 슬픔을 치유하고 나 스스로를 구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제 콜롬비아에선 부유층이 빈민가 치안을 강화하기 위한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후안 펠리페 고메스 에스코바르 재단처럼 사회문제를 다루는 재단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같은 배를 타고 있으며, 서로 도와야 한다는 교훈을 에스코바르가 말해주고 있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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