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텐트 속 밤새 도란도란… “집에선 이런 추억 절대 못만들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중년 아빠와 사춘기 딸의 자전거 여행

아빠와 딸은 용감했다. 자전거로 어디든 갔다. 올여름엔 제주도를 질주했다. 때로 힘도 들고 사고가 생기기도 했지만 부녀의 정이 두터워지는 계기일 뿐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성준 씨 제공
아빠와 딸은 용감했다. 자전거로 어디든 갔다. 올여름엔 제주도를 질주했다. 때로 힘도 들고 사고가 생기기도 했지만 부녀의 정이 두터워지는 계기일 뿐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성준 씨 제공
출발 전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이틀에 한 번꼴은 내리는 것으로 나왔다. 비옷에 방수커버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실제 여행길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딸과 나의 자전거는 끝없이 펼쳐진 까만 아스팔트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구나 싶었다. 근육이 뭉쳐 딱딱해진 다리로 힘겹게 페달을 밟는 내 딸 지원이가 안쓰러워 보였다. 이제 중학교 2학년. 어느새 저렇게 훌쩍 자랐다. 고생을 자처한 딸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기특한 마음이 교차했다.

“아빠, 우리 올해는 지난번에 못 갔던 금강, 영산강을 마저 달려보는 것 어떨까?”

뜻밖에도 올해 자전거 여행을 먼저 제안해온 건 지원이었다. 지난해 우리는 4대강 자전거길을 따라 국토종주를 했다. 국토종주가 뭔지 잘 몰랐던 딸은 아빠와 자전거 타러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샤이니 브로마이드와 음반을 사주면 따라가겠다”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나들이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응급실까지 실려 가는 등 갖은 고생을 한 덕에 나중엔 “자전거라면 당분간은 사양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던 아이였다. 딸아이의 마음이 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학교 과제로 자서전을 써봤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14년 인생에서 아빠하고 4대강 종주했던 작년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 지나니까 모두 추억이네.”

딸아이의 말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너무나 씩씩하고 속이 깊어져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 우리는 뜨거운 태양, 숨 막히는 더위와 싸우며 서해갑문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하루에 100km씩을 달렸다. 길 위에서 스스로의 한계와 싸웠고, 함께 도전했으며, 얼싸안고 울었다. 힘들긴 했지만 행복했던, 아빠와 딸의 자전거 여행이었다.
중년의 아빠, 사춘기 딸의 동행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한 1999년, 그해 12월 첫딸 지원이가 태어났다. 네 살 터울로 둘째 딸 예원이, 막내 지후가 차례대로 품에 안겼다. 공교롭게도 세 아이의 돌잔치가 시드니, 아테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린 해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유도선수 출신 체육교사를 아빠로 둔 ‘올림픽 아이들’이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큰딸 지원이는 중학생이 됐다. 사춘기를 맞은 아이는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부모 말이라면 언제나 잘 따르던 아이가 조금씩 반항하기 시작했고 웃는 모습도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다. 공부보다는 연예인을 더 좋아하고, 텔레비전과 채팅에 빠져 지내며 때로 거짓말도 했다. 크게 화를 내거나 꾸중도 해봤지만 아이는 이렇다 할 대꾸가 없었다.

그사이 내게도 변화가 있었다. 1970년생인 나는 마흔 셋, 15년차 교사가 돼 있었다. 집에서는 세 아이의 아빠, 직장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체육교사이자 운동부 감독으로 주변을 살필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그렇지만 첫 부임 때의 초심은 간 데 없고 그저 직업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 급급해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초라해 보였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4대강 공사가 끝나고 국토종주길이 생겼다는 뉴스를 봤다.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났다. 바로 이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남자의 기상을 되찾고 교사로서의 초심을 찾기 위해 633km에 달하는 국토종주에 도전해보자는 결심이 섰다. 중학생이 된 후 서먹하고 소원해진 딸과 함께 추억을 쌓으며 서로를 이해할 절호의 기회를 만들 수도 있을 듯했다. 아내는 걱정을 놓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딸아이가 의외로 흔쾌히 동의하자 준비는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지원이는 저금통 돼지를 잡아 새 자전거를 샀다. 장비를 갖춘 후 우리는 바로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지원이의 자전거 실력은 동네나 설렁설렁 도는 수준이었다. 내가 왕복 25km 거리를 매일 달리는 동안 지원이는 하교 후 15km씩을 달렸다. 주말에는 장거리 라이딩에 나섰다. 어떤 날은 60km까지 달리며 체력을 길렀다. 내심 체육교사의 딸이니 잘 따라와 줄 거라 기대했지만 지원이는 연습 내내 힘들어했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끝까지 핸들을 놓지 않았고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했다.

드디어 출발일이 왔다. 2012년 7월 30일, 짐을 싣고 아라서해갑문(인천 서구 오류동)에서 첫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잠을 설친 지원이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우리 모두 벅찬 설렘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겨우 10km 정도를 달렸을 무렵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근처 공사장의 ‘접근금지’ 입간판이 날아와 지원이를 덮쳤다. 끔찍한 사고였다. 지원이는 자전거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응급실에서 턱을 스무 바늘이나 꿰맸다. 기진맥진해 병실에 누운 지원이를 보자 이런 도전은 무모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지원이가 말했다.

“아빠, 걱정 마. 나도 같이 갈 거야.”

충혈된 눈으로 한참이나 말이 없던 아내도 하루만 쉰 뒤 함께 출발하라고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우리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사고가 났던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아픈 기억을 피하기보다는 교훈으로 삼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이 시작됐다. 지원이가 ‘아빠와 딸’이라고 손수 만든 노란색 깃발을 자전거 꼬리에 달고 달리고 또 달렸다.

서울 반포대교를 지나며 본 한강의 야경, 여주 이포보의 둥근 달, 조그만 텐트에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웠던 여주시장의 국밥, 사막을 지나는 것처럼 힘겨웠던 여주 강천보에서 충주 탄금대까지의 고비…. 우리는 수많은 풍경을 스쳐 지나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갔다.

한여름 공기는 때로 숨쉬기도 힘들 만큼 뜨거웠다. 중천의 태양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우리를 쫓아왔다. 초행에 랜턴 하나에 의지해 달려야 했던 어두운 길이며, 불빛을 보고 달려들던 하루살이 떼 때문에 고생이 이어졌다. 초경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원이가 생리통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 고통을 이해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아빠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저 지원이의 컨디션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쉬어가는 것 외엔 해줄 게 없다는 게 미안했다. 그렇게 달려 경북 문경에 입성했다. 칠곡보에 서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지금까지 왔던 길보다 적게 남아 있었다. 자신감이 붙었다.

마침내 부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파트단지와 다리들, 넓은 도로들이 나타났다. 8월 5일, 멀리 낙동강 하구가 보이자 지원이는 아빠를 앞질러 속도를 냈다.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게 흘렀다.

인천에서 시작한 6박 7일의 종주가 끝났을 때 어리고 약하다고만 생각했던 딸 지원이는 믿음직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는 데 급급해 잃어버렸던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와 딸의 행복한 여행 2탄


“좋아, 그럼 이번에는 여행 가는 기분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경치 좋은 곳도 들르자.”

아빠와 다시 한 번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지원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에는 도전에 의미를 뒀다면 올해는 아빠와 딸이 소통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운 여행에 의미를 두고 싶어서였다. 금강과 영산강을 종주한 뒤에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는 8박 9일(7월 24일∼8월 1일)의 일정을 짰다. 우도와 비양도,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까지 돌아볼 계획이었다.

“아빠, 비상약도 잘 챙겼지?”

한 번 해봤다고 지원이는 짐받이형 가방(패니어)과 텐트, 침낭, 매트 등 준비물을 꼼꼼히 챙겼다. 지난해 사고의 교훈으로 응급처치용 장비와 상비약까지 잊지 않고 준비했다. 나는 교사인 덕에 방학 때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지원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아 우리는 어렵지 않게 8박 9일의 여행 일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지난해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준비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거리가 지난해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따로 훈련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몸이 적응할 시간 없이 바로 장시간 라이딩을 하자 처음엔 부녀가 모두 잠도 못 자고 끙끙 앓았다. 일기예보와 달리 너무 뜨거운 날씨 탓에 햇빛에 노출된 피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우리가 함께한 여행의 한순간 한순간은 모두 특별했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의 ‘할망당’ 근처 잔디밭에 천으로 임시 집을 짓고, 파도소리와 바닷바람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눴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지원이는 그새 꿈이 바뀌어 있었다. 역사, 사회, 법 공부에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학교생활에 대한 지원이의 고민을 들으면서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 자기반성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달빛을 받으며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는 그 모든 시간이 너무나도 감사했다.

좋은 사람들과 그들의 격려도 큰 선물이었다. ‘아빠와 딸’이란 깃발을 보고 신기해하며 함께 사진 찍자고 한 외국인 관광객들, 여중생인 지원이가 아빠를 따라 힘든 길을 가는 것을 보고 빵과 과자 등의 음식을 나누어 주시며 대견스러워하고 응원해 주셨던 분들도 잊을 수 없다.
끝나지 않은 여행

“지원아, 내년에는 울릉도나 독도로 가보는 게 어떨까?”

“글쎄, 해외로 나가보는 건 어때?”

우리 부녀는 벌써 내년에 떠날 자전거 여행 생각에 부풀어 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어디를 가냐고 놀라며 만류하던 주변 사람들도 사춘기 딸과 친구처럼 지내게 된 나를 보면 무척 부러워한다.

아빠와 함께하면서 아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배웠다. 또 아빠 곁에서 참고 이겨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해 가게 됐다. 나는 아빠로서 딸 지원이에게 꼭 물려 줘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내심, 성취감, 삶을 대하는 성실한 자세, 이런 것이야말로 아빠가 물려줄 진정한 유산인 것이다.

어느 때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시기, 삶과 세상을 향해 눈을 뜨는 시기가 바로 중학생 시절이다. 이때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지혜와 힘이 될 것이다. 딸과의 여행을 내년에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이유다.

우리는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교훈들을 얻었다. 내년에는 좀 더 즐겁고 완벽한 여행을 위해서 미리미리 하나씩 준비해 나갈 생각이다. 첫째 딸 지원이와의 자전거 여행을 3탄까지 마무리 짓고 나면 둘째 예원이와 막둥이 지후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또다시 자전거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아, 사랑하는 아이들과 오래도록 즐거운 여행을 하기 위해, 이제 건강관리를 철저히 할 일만 남았다.
자전거 여행 팁

휴가철 자녀들과 잊지 못할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다음 사항들만은 꼭 지키도록 하자.

철저한 준비와 계획

무엇보다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능력을 기를 때까지 충분한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로 상황에 맞는 기어 조절 능력과 속도 조절 능력은 필수다. 또 ‘50분 라이딩 후 10분 휴식’ 규칙은 꼭 지키도록 하자. 우왕좌왕하지 않기 위해서는 식사할 곳, 취침할 곳을 미리 정하는 게 좋다. 간단한 자전거 수리 기술도 익혀두어야 한다. 안전을 위해 헬멧을 꼭 쓰자.

텐트와 코펠, 버너는 필수품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마땅한 식당이나 숙박시설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 주변은 도심과 떨어져 있다 보니 텐트나 코펠, 버너를 미리 챙겨 가면 매우 유용하다. 비상식량을 준비해 식당이 없는 구간이나 갑자기 배가 고플 때에 대비하자.

여행 복장은 잘 마르고, 편안한 것으로

자전거 전용 복장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간편한 트레이닝 복장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여름철엔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땀의 흡수와 건조가 잘되는 재질의 복장이 좋다. 강한 햇빛에 화상을 입는 것을 막으려면 얇은 긴팔 셔츠를 입는 게 좋다. 헬멧 안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햇볕으로부터 피부와 시력을 보호할 수 있다.

음식은 맛있고 영양가 있는 것으로

자전거를 장시간 탄다는 것은 체력 소모가 엄청난 일이다. 반드시 식사를 챙겨 먹어야 하고, 이왕이면 맛있으면서도 영양가 있는 것으로 먹는 게 좋다.

중간 휴식 때는 초코바나 에너지바 등 열량이 높은 간식이나 수분이 많은 과일을 먹고 물도 자주 섭취해야 한다.

짐은 몸이 아닌 자전거에 실어야

짐은 ‘패니어(짐받이 가방)’에 실어 몸을 편하게 해야 한다.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면 어깨와 몸이 쉽게 피로해진다. 가방 안의 짐을 지퍼백에 종류별로 넣어두면 비가 내려 가방이 젖어도 내용물은 젖지 않는다.

문성준 씨·대구 경명여중 교사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여행#자전거여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